헤알화의 추락은 최근 1년 동안 이어져 오다가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양적완화(QE) 축소 계획을 밝힌 올 5월 이후 더 가팔라졌다. 헤알화의 미 달러 대비 가격은 최근 3개월 새 12.85%나 떨어졌다. 미국의 경제제재를 당하고 있는 이란과 내전 중인 시리아의 통화를 제외하고는 세계 최고의 하락세다.
놀라운 반전이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사정은 딴판이었다. 그때 브라질 정부는 헤알화 가치 상승에 골머리를 앓았다. 기도 만테가 재무장관이 틈만 나면 “미국 등이 양적완화로 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뜨려 헤알화 가치가 뛰고 있다”며 “추악한 통화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외치곤 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마틴 울프 파이낸셜타임스(FT) 수석 칼럼니스트는 최근 기자와 만나 “중국발 나비효과 때문”이라고 말했다. 울프의 설명에 따르면 세계 경제가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만성적인 수요 부족 상태에 빠졌다. 중국의 수출이 줄면서 에너지와 원자재 수입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 이는 브라질 경제에 직격탄이 됐다. 5~6%씩에 이르던 연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올 1분기엔 1.92%까지 추락했다. 사실상 경기침체 상태다.
요즘 해외 투자자들은 브라질 국채 등을 팔고 탈출하기 바쁘다. 그 결과가 브라질 국채 값의 하락이다. 올 5월 이후 가격이 빠르게 떨어지면서 시장 금리가 치솟고 있다. 요즘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연 10%를 웃돌고 있다. 재정 적자 상태인 브라질이 감당하기 힘든 금리 수준이다.
블룸버그는 “브라질 헤알화 가치가 떨어지면 수입 생필품 가격이 오르면서 인플레이션이 더 심해진다”며 “그 바람에 해외 투자자들이 국채 등을 팔고 떠나면서 다시 헤알화 가격이 하락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지구 반대편 브라질의 헤알화 추락은 한국에도 강 건너 불이 아니다. 국내 투자자들이 브라질 채권을 4조원어치 이상 쥐고 있어서다. 헤알화 가격이 추락하는 만큼 앉아서 돈을 까먹고 있다.
대우증권 관계자는 “우리 회사도 브라질 채권을 판매해 말하기 조심스럽다”며 “브라질 사태가 악화하면 대공황 때 미국에서 일어난 금융 스캔들이 국내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바로 ‘찰스 미첼 스캔들’이다.
당시 내셔널시티은행(시티은행의 옛 이름)의 최고경영자(CEO)였던 미첼은 브라질 국채와 지방정부 채권을 대량으로 들여와 미국 투자자들에게 팔았다. 미 금융역사가인 존 고든은 저서인 『월스트리트제국』에서 “미첼은 금융에 무지한 산골 농부에게도 남미 채권을 팔았다”고 전했다.
미첼은 “브라질엔 자원이 넘쳐나고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절대 부도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공황으로 세계 경제가 추락했다. 자원 소비가 줄면서 브라질 등 남미 경제가 붕괴했다. 브라질 채권이 부도나면서 미국 투자자 수만 명이 고통을 겪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금융 스캔들이었다.
국내 금융회사 세일즈맨들이 브라질 채권을 팔면서 한 말은 미첼의 주장과 너무나 닮았다. 그들은 “브라질의 풍부한 자원이 (국채를) 뒷받침하고 있다”며 “게다가 브라질은 2014년 올림픽과 2016년 월드컵을 위해 인프라 투자를 늘리고 있어 경제성장이 계속된다”고 주장했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양적완화 축소 움직임을 보이면서 글로벌 금리가 들썩이고 있다”며 “금리가 더 오르면 돈 가뭄이 일어나면서 브라질 채권 값은 곤두박질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강남규 기자
출처: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2275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