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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류(분석)가 사라지고 지류(정보 수집 및 전달)가 그 자리를 꿰찼습니다. 또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의 솔직한 자기 고백이다. 그는 리서치 업계의 현실이 부끄러울 정도라며 고개를 떨궜다. 무엇이 애널리스트를 이렇게 부끄럽게 만드는 것일까. 한때 '증권가의 꽃'으로 불리던 애널리스트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고액 연봉의 거품은 꺼진 지 이미 오래다. 그들을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시선도 차갑기만 하다. 우리나라에 지금과 같은 형태의 리서치센터 조직체계가 갖춰지고 애널리스트의 업무분화가 이뤄진 시기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다. 애널리스트 1세대로 활동하다 지금은 해외상품부로 자리를 옮긴 이윤학 우리투자증권 이사는 "외환위기 직후 스티브 마빈 쌍용증권 이사가 외국계 증권사의 조직체계와 분석틀을 가져오면서 애널리스트가 섹터별로 특화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IMF 외환위기 전까지 리서치센터는 투자분석실 또는 투자전략실로 불렸고 특정 업종에 특화된 애널리스트도 거의 없었다. 리서치센터라는 용어는 지난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 정착됐다. 이때부터 리서치센터가 시장 전체의 흐름을 살피는 투자전략팀과 특정 분야를 담당하는 섹터별 기업분석팀으로 나뉘기 시작했다. 시장이 박스권에 갇히면서부터 섹터 분석은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 입지를 굳혀갔다. 최근 사전 정보 제공과 엉터리 실적 예측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섹터 애널리스트의 출발이었다.

업계에 애널리스트의 전성기가 언제였냐고 물으면 2001~2007년을 답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바로 미국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이 촉발한 전세계 금융위기 바로 직전까지다. 이 시기는 500포인트대에 불과했던 코스피지수가 1,000포인트를 넘어 2,000선까지 추세적으로 상승했던 때다. 리포트가 나오면 주가가 즉각적으로 반응할 때여서 애널리스트도 덩달아 황금기를 누렸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환경은 바뀌었다. 국내 경제는 장기간 저성장의 구렁텅이에 빠졌고 코스피도 박스권에 갇혀버렸다. 지수가 지지부진하면서 기관투자가들은 더 이상 시장의 방향성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시장의 방향성과 관계없이 수익을 낼 수 있는 정보가 대접을 받았고 애널리스트들은 그 수요에 맞춰 종목별 분석을 해야 했다. 정확하게는 분석보다 취재가 요구됐다.

특히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1~2년 전부터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 간의 갑을관계가 심화됐다. 특히 미래에셋자산운용이 분위기를 바꿨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당시 업계에서는 '미차디' '미차솔'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미차디와 미차솔은 업계 최초로 조 단위 자금을 끌어모았던 '미래에셋 차이나 디스커버리 펀드'와 '미래에셋 차이나 솔로몬 펀드'를 지칭하는 말이다. 두 펀드의 덩치가 너무 커 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다 보니 부작용도 발생했다. 바로 갑(펀드매니저)의 횡포다. 당시를 기억하고 있는 한 연구원은 "미차디와 미차솔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 간 관계가 이 정도는 아니었다"며 "미래운용에 기업 분석 보고서를 들고 찾아가면 '당신이 뭘 안다고 보고서를 가지고 오나. 당신 의견은 필요 없으니 IR 담당자를 통해 숫자(실적)가 나오면 그거나 제일 먼저 알려달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연구원은 "펀드에 편입한 종목의 목표주가를 낮추면 주문을 안 받아주고 매도 보고서를 낼 때는 먼저 전화를 해달라는 얘기도 나오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당시 운용 업계 선두를 달리던 미래의 이 같은 행태는 순식간에 업계 전체로 퍼져나갔다. 이후 애널리스트가 펀드매니저에게 숫자를 먼저 알려주는 것이 당연한 업무로 굳어졌고 목표주가를 올리기 전에 미리 언질을 주기로 하는 등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관행이 됐다. 본류가 좁아지자 지류로 물이 몰려들었고 새로운 흐름이 시장을 장악해나간 것이다.

요즘 리서치 업계의 현실은 암담할 정도다. 지난해 CJ E&M 사태를 계기로 애널리스트가 IR 담당자로부터 사전에 실적에 대한 정보를 받기 어려워지면서 애널리스트의 실적 예측력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만천하에 드러났다. CJ E&M의 2·4분기 영업손실은 131억원이었다. 이에 앞서 애널리스트들은 CJ E&M의 2·4분기 영업이익을 100억~190억원 수준으로 전망했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애널리스트 스스로 업황·상품별 판매 증가 등을 고려해 매출을 추정할 수 있는 모델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동안 IR 담당자에게 의존하다 보니 그런 능력이 전혀 쌓이지 않았다"며 "애널리스트들이 IR 담당자로부터 들은 숫자를 토대로 결론을 정해놓고 논리를 찾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천편일률적인 보고서도 문제다. 애널리스트들이 단체로 기업을 탐방한 후 IR 담당자가 주는 자료를 정리하는 정도의 보고서가 판을 치는 것이다. 한 시니어 애널리스트는 "후배들에게 '떼 지어 다니지 말라'고 늘 강조한다"며 "어떤 날 보면 한 업체에 대한 리포트가 동시에 5~6개씩 올라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보고서에서 차별화된 분석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는 애널리스트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꼬리(정보 수집 및 전달)가 몸통(분석)을 흔들면서 정작 실력 있고 연륜 있는 연구원들은 스스로 짐을 싸고 있다. 정보기술(IT) 관련 기업 분석 1세대로 꼽히는 박재석 삼성증권 연구원도 그중 하나다. 박 연구원은 최근 작은 게임업체로 자리를 옮겼다. 박 연구원과 같은 세대로 그를 곁에서 지켜본 한 펀드매니저는 "박 연구원은 항상 자신만의 분석 방법과 논리가 있었기 때문에 의견이 다르더라도 경청했다"며 "그런 능력 있는 연구원이 업계를 등지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환경이 다시 정상화되고 증권가의 꽃이 생기를 되찾는 데는 잘못된 풍토가 조성된 시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CJ E&M 사태 이후 업계의 불편한 관습들에 제동이 걸린 것은 사실이지만 근본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은 채 우리의 시야에서 잠시 벗어난 상태다. 한 업계 고위관계자는 "잘못된 풍토가 굳어진 기간이 길었던 만큼 이를 수정하는 시간도 길 것"이라며 "근본적인 업계 풍토의 변화 없이는 CJ E&M 사태는 1~2년이 지난 뒤 다른 형태로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하나씩 풀어가야 한다.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간략하게 네 가지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기업을 공개하고 자금조달을 한 업체들은 기업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이자비용으로 생각하고 애널리스트들 혹은 투자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설명의무를 다해야 한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들의 부품업체 입막음 풍토도 개선돼야 한다.

애널리스트들 역시 펀드매니저, IR 담당자와의 먹이사슬을 끊어내고 본인의 철학을 가지고 취재보다 분석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평가 방식도 바꿔 분석능력이 있는 애널리스트에게 가산점을 주고 부정한 행위에 대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출처: http://economy.hankooki.com/lpage/stock/201409/e2014091217421511764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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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금리 변동성도 높아질 전망입니다. 가장 중요한 신호는 노동시장의 임금상승 압박이 될 것입니다."

피델리티자산운용은 26일 서울 여의도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미국 Fed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제기됨에 따라 금리에 민감한 자산의 비중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피델리티 글로벌 멀티에셋 인컴펀드'를 운용하는 유진 필라리티스 피델리티 솔루션그룹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기준금리가 상승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금리의 변동성이 높게 나타날 것"이라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현재 운용중인 펀드의 현금 비중을 높여놓은 상태"라고 밝혔다.

빠른 시일 내에 Fed가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전망되지는 않지만, 시장의 시각이 기준금리 인상 쪽으로 옮겨갈수록 변동성은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는 "현재 시장의 전망은 Fed의 금리인상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쪽에 더 치우쳐 있다고 본다"면서도 "앞으로 경기지표에 따라 중립이나 금리인상에 베팅하는 투자자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경기지표는 노동시장의 임금상승 신호라고 봤다.

필라리티스 매니저는 "임금이 상승하는 움직임이 나타난다면 Fed의 금리인상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최근 지표들은 아직 임금과 관련된 신호는 나타나고 있지 않아 여유는 있다"고 밝혔다.

그는 "금리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에 민감한 자산의 비중은 낮춘 상태"라며 "변동금리인 대출자산에 대한 투자를 선호하고 있으며, 저금리 기조에서 가장 수혜를 봤던 부동산에 대한 투자는 줄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채권 쪽에서도 가능한 한 단기채권의 비중을 높여 변동성에 대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시장처럼 변동성이 낮고 가격 부담은 높아진 상황에서는 복리효과를 누릴 수 있는 인컴 투자가 매력적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최근에는 주식 배당인컴 투자전략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필라리티스 매니저는 "배당 인컴투자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배당금을 재투자해 복리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식시장 회복에 힘입어 배당주 주가가 회복되고 대폭적인 주가 재평가가 이뤄짐에 따라 배당수익률이 감소하기는 했다"며 "하지만 기업실적 개선으로 배당금도 급증했기 때문에 주식 배당인컴 투자는 여전히 매력적"이라고 밝혔다.

최근 수년간 주가가 가파르게 상승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배당수익률은 감소하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신흥국보다는 선진국 주식의 투자매력이 높다고 봤다.

필라리티스 매니저는 "올해에는 신흥시장 주식에 전혀 투자하고 있지 않다"며 "신흥시장 전반적으로는 구조적으로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지역별로는 남미나 유럽에 비해 아시아 신흥시장은 경기 선행지표들이 높게 유지되는 등 여전히 잠재력이 큰 시장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아시아 기업들의 양호한 성장성과 재무상태를 볼 때 앞으로 배당이 늘어날 것"이라며 "기업들이 배당을 확대하면 기관 투자자의 비중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어 전체 시장의 안정성에는 긍정적"이라고 덧붙였다.

필라리티스 매니저가 운용하는 '피델리티 글로벌 멀티에셋 인컴펀드'는 주식, 채권, 인프라 등 여러지역의 다양한 자산에 투자해 안정적인 인컴(이자 및 배당) 수익을 추구하는 펀드다. 연간 5~5.5%의 인컴을 목표로 운용되고 있다.

한경닷컴 김다운 기자 kdw@hankyung.com

 

출처: http://stock.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08267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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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모음/경제 일반 2014. 8. 27.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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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기대수익률 2.6% 사모펀드·3%대 저축은행 특판 상품 등
ㆍ조금만 이자 높아도 ‘완판’… 원금 손실 가능성 염두에 둬야


‘5분 완판’ 상품에 ‘영업점에서 의리!’까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이후 은행 예금 금리가 연 1%대까지 떨어지는 초저금리 시대에 진입하면서 조금이라도 금리를 더 주는 상품에 돈이 몰리고 있다. 안전자산을 선호했던 투자자들도 기업어음(CP), 주가연계증권(ELS), 사모펀드 등 수익률을 좇아 서서히 위험자산에 눈을 돌리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원금보장형이 아닌 상품은 조건에 따라 원금손실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위험 선호 수준에 맞는 상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26일 기업은행에 따르면 기업은행이 지난 25일 중국 국영은행의 신용과 연계한 사모펀드 투자자를 모집한 결과 접수 5분 만에 판매한도 100억원이 모두 소진됐다. 해당 은행이 파산하지 않는 한 수익률이 보장되는 상품으로 기대수익률이 2.6%다. 최소 가입금액이 1000만원으로 작지 않은 금액이어서 은행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같은 날 역시 기업은행이 판매한 유럽 주가지수와 연계되는 연 3.8% 수익률 보장 주가연계펀드(ELF) 상품도 100억원어치가 모두 팔렸다. 유럽 주가지수가 하루 10% 이상 폭락하지 않는 한 연 3.8%의 수익률을 보장하는 구조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최근 예금금리가 워낙 낮은 상황이라 투자자들이 몰려든 것 같다”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시중은행보다 상대적으로 고금리를 제공하는 저축은행 예·적금의 인기도 높다. 회사원 권모씨(32)는 최근 직장 동료 5명과 함께 OK저축은행 영업점을 찾았다. 이 은행에서 내놓은 ‘끼리끼리적금’에 가입하기 위해서다. 이 상품은 기본금리 3.8%를 주고, 5명 이상의 친구가 영업점을 찾아 손을 잡고 “의리”를 외치면 가산금리 0.5%포인트가 더 붙게 된다. 권씨는 “좀 창피하기도 했지만 요새 같은 저금리 시대에 4.3% 금리는 찾아보기 어려워 친구들을 모으게 됐다”고 말했다.

저축은행중앙회 홈페이지를 보면 각 저축은행의 예금금리를 비교해 볼 수 있는데 1년 정기예금은 보통 2.6~2.8%의 금리가 제공되고 있다. 3%대 금리를 제공하는 특판 상품은 일찌감치 소진됐다. 유니온저축은행이 150억원 한도로 내놓은 연리 3.35%의 특판 정기예금 상품은 한은이 기준금리 인하를 발표한 14일 완판됐다. 참저축은행이 18일 내놓은 연 3.3% 특판 정기예금도 100억원어치가 지난주 모두 팔려나갔다.

카드 가입, 신규계좌 가입, 월급통장 이체 등 까다로운 조건이 붙어 인기가 그리 높지 않았던 고금리 예금도 최근 들어서는 가입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 농협은행의 ‘법사랑플러스 적금’은 기본금리 연 2.41%에 카드 사용, 주택청약저축 신규 가입 등의 조건을 충족하면 연 3.41%까지 금리를 높여주는 상품인데, 한은의 금리 인하 후 일주일간 판매액이 전주보다 30% 급증했다. 기본금리 연 3.0%에 카드 사용실적에 따라 최대 3.0%의 우대금리를 얹어 주는 우리은행의 ‘우리함께 행복나눔 통장’은 한은의 금리 인하 후 일주일 동안 1만명이 넘는 고객이 신규 가입했다. 최고금리 연 5.5%인 하나은행의 ‘난 할 수 있어 적금’도 같은 주 1만여명의 신규 고객을 확보했다.

출처: http://bizn.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408262103265&code=920301&med=k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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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결정은 몇 가지 문제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습니까? 그쪽 문제나 먼저 해결 하세요."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논점 이탈의 오류(혹은 논점 흐리기 오류)이다. 논점과 책임을 엉뚱한 데로 돌려 본질을 흐리는 방법이다. 비단 정치권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도 많이 사용하는 위기 탈출법이라고 할 수 있다.



-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비슷한 논리적 오류로 '레드 헤링(붉은 청어)'이 있다. 훈제한 청어는 특유의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데, 과거 영국에서는 '레드 헤링'을 사용해서 여우 사냥개를 훈련시켰다고 한다. 압도적인 냄새를 내는 '레드 헤링'을 뚫고 먹잇감을 찾아내도록 후각을 단련시킨 것이다.


논쟁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핵심을 놓치고 방황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 우리의 눈앞에는 분명 '레드 헤링'이 나타났을 것이다. '아, 말렸다'고 탄식해봤자 이미 때는 늦었다. 논쟁은 표류했고, 남은 것은 지엽적인 문제들이나 자극적인 가십뿐이다.



"'유민 아빠' 김영오 씨를 공격하라!"


지난 22일, 단식을 40일 째 이어오고 있던 고(故) 김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47)씨는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인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시민사회를 비롯한 각계각층은 '유민 아빠를 살려야 한다'고 입을 모아 외쳤다. '유민 아빠' 김영오 씨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히기를 원하는 시민들의 '구심점'이 되었다. 유가족이 동의하는 세월호 특별법을 정면으로 가로막고 있는 청와대와 새누리당으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들에게 가장 껄끄러운 대상은 바로 '유민 아빠' 김영오 씨였을 것이다.


'타깃'은 확실해졌고, 방법은 늘상 해왔던 '본질 흐리기'였다. '유민 아빠' 김영오 씨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힘으로써 구심점으로서의 역할을 상실케 하고, 이를 통해 가족을 분열시키는 한편 시민들을 혼란 속으로 빠뜨리는 것 말이다. 결국 김영오 씨 앞에 붙은 수식어 '유민 아빠'의 지위를 박탈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였을 것이다.



지난 23일 유민이의 외삼촌이라고 주장하는 윤 모씨가 세월호 관련 기사에 위와 같은 내용의 댓글을 달았다. 이 글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급속히 퍼져나갔다. 또, 김영오 씨가 이혼을 했다는 사실과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조직원이라는 사실도 무분별하게 옮겨졌고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사실관계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내용들이 '유민 아빠' 김영오 씨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혔고, 이런 과정을 통해 점차 본질은 사라지고 가십거리만 남게 됐다.


가족대책위는 기자회견을 통해 "유민 아빠의 고향인 정읍에 국가정보원 요원이 내려가서 어떻게 생활하고 자랐는지 쑤시고 다니는 사실을 포착했다"면서 국정원이 김영오 씨를 사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러한 의혹 제기에 대해 국정원은 "김영오 씨의 두 딸이 어떻게 자라왔는지 조사한 사실이 없고 지시조차 한 바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린 국정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병원에 이틀간 있어보니 각종 악성 루머와 댓글이 난무하더군요. 그래도 난 떳떳하니까 신경 안 쓸 겁니다."


'유민 아빠' 김영오 씨에 대한 악성 루머가 독버섯처럼 번지기 시작하자 김영오 씨는 결국 자신을 둘러싼 음해성 의혹 제기에 대해 해명을 하기에 이르렀다. 우선, 외삼촌이 쓴 댓글에 대해서는 "유민 엄마나 동생이나 전혀 알지 못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유민 엄마가 동생에게 전화해서 화를 냈고 바로 글을 내렸다"면서 이 정도면 어떤 상황인지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삼촌이 어떤 의도로 그 글을 썼는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설령 외삼촌이라고 하더라도 부부의 관계나 부녀의 관계에 대해서는 제3자에 불과하다. 또, 유민 엄마가 이 사실을 알고 동생에게 연락을 취해 화를 낸 후 글을 내렸던 점을 미뤄볼 때, 감정에 휩쓸려서 글을 작성한 것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글의 내용도 정제되어 있다기보다는 감정 과잉으로 보인다.



세월호 참사로 숨진 김유민 양의 동생인 김유나(17) 양은 <오마이뉴스>에 아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겠다는 의사를 전달하면서 외삼촌의 댓글에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인터뷰 내용의 일부를 발췌해서 옮겨두었다. 이 정도만 읽어봐도 외삼촌의 댓글이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확실히 드러난다. 오히려 외삼촌이 그런 댓글을 단 의도가 단순히 김영오 씨에 대한 악감정 때문인지 혹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링크를 클릭해서 확인해보길 바란다.


- 외삼촌이 쓴 댓글을 언제 봤나요?

"오늘 아침에 봤어요. 좋은 아빠인데, 그런 얘기로 알려져서 좋은 아빠라는 점이 가려졌어요. 좋은 아빠인 것이 다시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기소권과 수사권이 포함된 세월호 특별법 만들려는 아빠의 노력이 무너진 것 같아서 속상해요."


- 글을 본 뒤에는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당황스러웠어요. 제게 아빠는 착하고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이미지예요. 삼촌 글에서는 아빠와 딸 사이가 좋지 않게 보였어요. 삼촌은 아빠가 나쁜 사람이라고 글을 썼는데…. 저로서는 당황스러웠어요."


(…)


- 마지막으로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안녕, 아빠. 어렸을 때부터 자주 못 봤지만, 언니와 나를 잘 챙겨줘서 고마워. 아빠가 잘 챙겨주려고 노력한 것들 다 보였어요. 너무 고마워요. 또 아빠가 전화할 때 사랑한다고 말해줘서 고마워. 아빠가 먼저 사랑한다고 안 하면 나는 사랑한다고 말 할 일이 없었어요. 아무튼 다 고맙고 몸부터 챙겨요. 그래야 싸우죠, 사랑해요."


"좋은 아빠인데, 외삼촌 글 '당황' 아빠의 노력 무너진 것 같아 속상" <오마이뉴스>



다음은 '유민 아빠' 김영오 씨를 둘러싼 음해성 의혹 제기와 그에 대한 김영오 씨의 대답을 간단히 정리한 것이다.


1. 10여 년 전에 이혼한 후 양육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


"매달 비정규직 월급으로 대출 이자도 갚기 힘들게 살다보니 양육비를 꼬박꼬박 보내주지 못하고 몇 달에 한 번씩 보낼 때도 있었다. 우리 부녀지간은 일년에 몇 번 안 보더라도 사랑이 각별했다. 이혼하고 너무 힘들게 살다 보니 두 아이를 보고 싶어도 자주 못 보고, 사주고 싶어도 많이 사주지 못했던 것이 한이 맺히고 억장이 무너지기 때문에 목숨을 바쳐 싸우고 있는 것이다."


2. 보험금을 챙긴 것 아닌가? 실제로는 돈 때문에 단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두 달 전 학교에서 여행자 보험금 1억원이 나왔는데, 이혼한 부모에게는 보험금이 50 대 50으로 나온다. 나는 우리 유민이한테 해준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만 하면 죄인이 된다. 그래서 보험금을 10원도 안 받고 유민 엄마에게 전액 양보했다. 우리 유민이 앞에 놓고 보상금 얘기 두 번 다시 하지 않았으면 한다. 저는 지금 돈 10원도 필요 없고, 유민이가 왜 죽었는지 밝혀내는 게 우선이다."


3. 김영오 씨는 금속노조 소속 조직원이다.


"작년 7월 22일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다 정규직으로 전환됐고,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노조 조합원이 돼 봤다.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자동으로 조합원에 가입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조 조합원을 떠나서 억울하게 죽은 부모의 입장으로서, 아빠로서 싸우고 있다."



김영오 씨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정체불명의 악성 루머들은 여전히 떠돌아다닐 것이다. 그러한 루머를 퍼뜨리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본질 흐리기'일 테니 말이다. 어떻게든 '유민 아빠' 김영오 씨를 해코지해서 그의 '아빠'로서의 이미지를 망가뜨리고자 할 것이다. 이미 그 작업은 조직적으로 본격화됐다. 그리고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라고 하는 본질과 이에 대한 '유민 아빠' 김영오 씨를 비롯한 세월호 유가족들의 요구가 김영오 씨의 사생활 논란으로 비화(飛火)될 가능성이 높다. '이혼', '노조' 등의 단어들이 포함된 자극적인 기사들이 쏟아질 것이고, 사람들은 이러한 가십에 눈과 귀과 쏠려 '본질과 핵심'은 까마득히 잊어버릴 것이다. 급기야 김영오 씨의 진정성을 의심하기도 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레드 헤링'을 통해 사람들을 홀리기 위한 꼼수에 흔들리지 말자. 왜곡된 정보에는 단호하게 대응하자. 위에 정리해둔 김영오 씨의 대답을 근거로 악성 루머를 응징하도록 하자. 그리고 거기에 그치지 말고,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라고 하는 '본질'을 잊지말고 거듭해서 이야기하자.


버락킴' 그리고 '너의길을가라'

 

출처: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3052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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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모음/경제 일반 2014. 8. 24.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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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소비자 간 분쟁을 중재하는 한국소비자원의 조정 결정에 대한 수락률이 해마다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기업이 소비자원의 조정 결과를 무시하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21일 새정치민주연합 정호준 의원에게 제출한 '최근 5년간 10대 기업 분쟁조정 현황'에 따르면 2009년 10대 기업 관련 총 122건 조정 결정이 내려졌고 이 중 116건의 조정이 성립돼 95%의 성공률을 보였다. 그러나 조정 결정 성공률은 2010년 80.9%, 2012년 73.8%를 기록하더니 지난해에는 61.1%까지 급락했다.

소비자원은 소비자가 문제제기하면 조사를 통해 1차로 합의 권고를 내린다. 합의가 안 되면 각계 전문가가 참여하는 분쟁조정위원회를 열어 90일 이내 조정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어느 한쪽이 수용하지 않으면 조정이 결렬되고 소송 등 다음 절차로 넘어가게 된다.

최근 10대 기업의 조정 결정 성공률이 급락한 이유는 기업이 소비자원의 조정 결정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10대 기업의 조정 결정 불복 건수는 전체 122건 중 2건(1.6%)에 불과했으나 2010년에는 9.5%로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전체 89건 중 27건이나 수락을 거부해 불복률이 30.3%까지 높아졌다.

지난해 현대·기아차의 조정 결정 8건 중 3건(37.5%)만 받아들여 역대 최하위를 기록했고 한화 0%, GS 25.0%, SK 69.7% 등 주요 기업들의 조정 결정 수용률이 저조했다. GS는 홈쇼핑에서 판매한 화장품 사용 후 부작용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해 '배상하라'는 조정 결정이 나왔지만 모두 거부했다. SK도 이동통신 서비스 계약 해지나 단말기 대금청구 문제 관련 계약을 해제하라는 소비자원의 결정에 대부분 불복했다.

특히 현대·기아차는 2009년과 2010년에는 조정 결정을 대부분 받아들이다 이후 불복하는 경우가 급속히 늘고 있다. 2013년에는 차량 하자나 부식된 차량 수리 요구 등에 대한 소비자원의 배상 및 수리·보수 조정 결정을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1년에도 주행 중 시동이 꺼지는 차량에 대한 소비자원의 교환 결정을 수락하지 않았다. 항공기 운항 지연에 따른 분쟁이 많았던 한진도 2009년에는 조정 결정을 모두 받아들였으나 이후에는 관련 손해배상 조정 결정에 모두 불복했다.

기업별로 지난 5년간 가장 많은 소비자 분쟁이 발생한 대기업은 SK(87건) 한진(85건) LG(65건) 등이었다. 이들 기업의 조정 결정 수용률은 78∼90% 사이로 비교적 높았다. CJ는 지난 5년간 9건의 조정 결정을 모두 받아들여 100% 수락률을 보였고 삼성과 LG의 조정 결정 수용률도 각각 86.6%, 86.1%로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반면 현대·기아차는 지난 5년간 31건의 조정 결정 중 18건(58.0%)만 조정이 성립됐다. GS와 롯데의 조정 성립 비율도 각각 60.0%와 66.6%에 그쳤다.

정 의원은 "소비자원의 분쟁조정은 강제조정 권한이 없다 보니 기업들이 무시해도 제재할 수 없다"며 "조정 결정에 강제성을 부여하는 입법 추진도 고려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

출처: http://media.daum.net/economic/others/newsview?newsid=20140822030804214&RIGHT_COMM=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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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모음/경제 일반 2014. 8. 20.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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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초저금리 시대에 들어선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이 시장을 엄습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로 은행들이 예·적금 금리를 내리면서 이제 '연 1%대 금리'는 우려가 아닌 현실로 다가왔다. 고령화로 은퇴자 등 이자 생활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대비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7일 금융권과 한국은행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가 일어난 2008년 연 5.87%에 달하던 시중은행의 1년짜리 정기예금 금리는 2010년 3.86%, 지난해 2.89%를 거쳐 올해 6월에는 2.68%로 가파른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최근 두달 새 시중은행들이 예금 금리를 잇따라 내리면서 고객들의 체감 금리는 연 2.2~2.3%에 불과한 실정이다.

실제 개인고객 수가 2900만명으로 국내 최대인 국민은행의 주력 예금상품은 '국민수퍼정기예금'으로, 1년 만기 상품의 금리가 연 2.29%에 불과하다.

하나은행의 대표상품인 '고단위플러스 정기예금'과 '빅팟 정기예금'의 금리는 각각 연 2.2%이며, 우리은행의 '우리유후정기예금'은 3000만원 미만 가입시 연 2.3%의 금리를 준다.

그런데 지난 14일 한은이 기준금리를 기존 연 2.50%에서 연 2.25%로 0.25%포인트 인하하면서 연 2% 초반대 예금상품마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시장금리의 향방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연 2.2%짜리 정기예금의 금리가 0.25%포인트 인하된다면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연 2.0% 선을 뚫고 내려가게 된다.

더구나 일부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기준금리의 추가 인하가 현실화한다면 연 2%대 예금 상품은 '전멸'할 것이라는 게 은행들의 예상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기준금리 인하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모든 지표를 고려해 적절히 대응하겠다"고 말해 기준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을 열어뒀다.

한국보다 앞서 시중금리의 지속적인 하락을 경험한 일본은 이미 초저금리 시대로 접어든 지 오래다.

지난해 일본의 한 은행은 우량고객에 대한 특판 마케팅을 펼치면서 1~3년 예금금리는 연 0.3%, 5년 금리는 연 0.35%를 제시했다. 일반 정기예금의 금리는 0%나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이자소득의 감소는 노년층에게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노후소득에서 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60∼80%대에 달하는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그 비중이 13%에 불과하다. 더구나 노인복지 체계가 훨씬 미비해 이자소득 감소는 노년층의 소비 감소와 생활수준 저하로 직결될 수 있다.

전체 가계가 받는 타격도 크다. 2012년 가계 이자소득은 49조원으로, 이자소득이 총 가계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에 육박했다. 이자소득 감소가 가계소득 감소와 소비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 비즈앤라이프팀 >

 

출처: http://finance.daum.net/rich/news/finance/main/MD20140817085707894.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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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모음/경제 일반 2014. 8. 15.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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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등 3개 대학 공동연구
이익 1弗 늘때마다 투자 25센트↑
주가 10% 상승땐 4.3% 증가
연준, 투자 확대 유도하려면 규제·노동정책 개혁에 초점을

 

전 세계적으로 초저금리가 계속되는데도 기업들은 왜 선뜻 투자를 하지 않을까. 이 같은 의문을 해결해줄 새로운 조사 결과가 나왔다.

마켓워치는 4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및 다트머스·로체스터대 연구진의 공동조사 보고서를 인용해 저금리가 기업의 투자 결정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반면 이익이나 주가 수준이 투자와 큰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도했다.

MIT 슬론경영대학원의 S P 코타리 부학장이 주도한 이번 연구는 기업의 투자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 지난 1952년부터 2010년까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분기별 기업투자 자금흐름 데이터와 이익·주가·변동성·장단기금리 등을 비교했다.

 

그 결과 저금리가 기업 투자를 촉진하지도 않았으며 반대로 금리가 높다고 해서 기업 투자가 위축되지도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금리가 낮으면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고 이는 생산성 향상과 일자리 창출로 이어진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외부의 '싼' 자금이 기업의 투자 결정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코타리 부학장은 "연준이 지난 5~6년간 금리를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낮춰왔음에도 기업들의 자본 지출이 거의 늘지 않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준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기업 투자를 유도하는 최대 변수로 이익과 주가를 꼽았다. 이익이 1달러 증가할 때마다 그다음 분기에 해당 기업의 투자가 25센트 늘어났다. 5분기 후에는 투자가 약 1달러 확대됐다. 또 주가가 10% 상승하면 이후 18개월 동안 투자가 4.3% 증가했다. 이와 함께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침체기에 투자가 감소한 것은 여신경색 때문이라기보다 국내총생산(GDP)과 이익 및 주가 하락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경기 사이클상 최고점에서 과잉투자를 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투자가 정점을 찍은 직후 곧바로 기업이익과 주가가 하락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이론상으로는 투자가 늘면 이익이 늘고 주가가 올라야 하지만 실제로는 기업의 자본지출이 1달러 늘어나면 3~6개월 후 이익이 70센트가량 하락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본지출과 기업 실적의 '역상관관계'에 대해 코타리 부학장은 "주가와 이익이 늘더라도 적절한 시기에 투자를 줄여야 하는데 이를 못하는 경영진의 비이성적 과열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한편 보고서는 연준 정책입안자들이 기업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세율이나 규제, 노동정책 개혁 등에 초점을 맞춰 투자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노희영기자 nevermind@sed.co.kr

출처: http://media.daum.net/economic/world/newsview?newsid=2014080517291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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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모음/경제 일반 2014. 7. 5.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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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카트21] 한국 경제의 피케티 비율 ② 부의 증가·분배에서 존재감 커져만 가는 자본과 자리 잃어가는 노동…

'대체탄력성', 심화되는 불평등을 설명하는 열쇠지만 개념에는 논란 있어

 

지난호에서 살펴본 것처럼 현재 한국의 부/소득비율(β)은 매우 높은 수준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균제상태'에서의 부/소득비율이 저축률/성장률(s/g)이라는 점을 떠올려보자. 선진국에 비해 저축률이 높지만 그만큼 성장률도 높은 편이어서 부/소득비율이 특별히 높아야 할 이유는 없다. 2013년 기준으로 (순)저축률이 18%인데, 앞으로 저축률이 더 올라가지는 않고 또 소득증가율은 적어도 3%를 유지한다고 가정할 때, 한국의 부/소득비율은 6 이하여야 한다. 그런데 2012년의 이 비율은 민간부 기준으로 7.5, 국부 기준으로 9.5다. 아마도 적정 수준을 넘어섰거나 이미 최대치에 도달한 상태인지 모른다. 실제로 한국의 부/소득비율은 2009년을 정점으로 상승세가 멈추었다.

저축·자산값 상승, 부 증가의 두 요인

부가 증가하는 것은 우리가 해마다 벌어들인 소득 가운데 일부를 저축하기 때문이다. 저축이 쌓여 부가 된다. 부가 늘어나는 또 다른 요인이 있는데, 바로 자산가격의 상승이다. 자산가격이 일반 물가(예를 들어 소비자물가)와 같은 속도로 상승하면 부/소득비율 계산에서 가격상승률이 상쇄되므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문제는 자산가격이 일반 물가보다 더 빠르게 오르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경험적으로 그렇다. 경제학에서는 자산가격의 상승에 자본이득(capital gain)이라는 이름을 붙이는데, 자본이득률이 일반 물가의 상승률보다 높으면 부의 실질가치가 증가한다. 만약 당신이 20년 전에 산 아파트의 가격이 3배 올랐는데, 그동안 물가는 2배 올랐다면 당신의 '실질' 부는 상승한 것으로 평가된다. 토지나 주식에도 같은 기준이 적용된다.

실제로 토마 피케티는 부가 증가하는 데 저축과 자본이득이 얼마만큼 기여했는지 계산했다. 주요 선진국을 대상으로 1970~2010년을 분석한 결과 평균적으로 저축에 의한 증가 부분이 약 60%, 자본이득에 의한 증가 부분이 40%였다(독일만 예외적으로 자본이득 기여분이 마이너스였다). 어쨌든 자본이득의 기여분이 0을 넘는다는 것은 부의 가치가 물가보다 더 빠르게 상승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럼 한국은 어떠한가? 그래프는 우리나라의 자산가격상승률과 소비자물가상승률 추이를 보여준다.

그래프를 보면, 2006년과 2007년에는 자산가격상승률이 소비자물가상승률을 크게 웃돌았고, 그 뒤 격차가 좁혀지긴 했지만 자산가격상승률이 여전히 소비자물가상승률보다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소득비율이 증가하게 된 것은 저축을 많이 한 까닭일 수도 있지만, 물가상승률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발생한 자본이득 때문이기도 하다. 즉, 과거 한국에서 부/소득비율이 급격히 상승한 것은 높은 저축률과 높은 자본이득률의 상승작용에 의한 것이다. 필자는 피케티의 방식을 적용해 2005~2012년 한국의 실질 국부 상승을 저축에 의한 부분과 자본이득에 의한 부분으로 분해해봤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실질 국부는 이 기간에 40% 정도 증가했는데, 그 내용을 보면 43%는 저축에 의한 것이지만 나머지 57%는 실질 자본이득에 의한 것이었다. 피케티가 분석한 주요 선진국에 비해 자본이득의 비중이 훨씬 높게 나왔다.

소득이 쌓여 부가 되지만, 부의 가치가 유지되는 것은 부를 통해 그에 상응하는 소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부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앞으로 소득을 더 많이 얻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부/소득비율은 앞으로도 계속 올라갈 수 있을까? 앞서 말한 대로 '균제상태'의 비율과 비교평가할 때 이미 높은 수준으로 올라와 있다는 점, 게다가 부의 상승이 저축보다는 자본이득에 더 의존해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 부/소득비율이 더 오를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현재 수준을 유지하거나 심지어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적어도 관성적으로 부/소득비율이 올라가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만약 더 오른다면 그것은 거품일지 모른다!).

노동소득의 몫은 점점 줄어들고

한 경제의 부/소득비율이 높으면 평균적인 소득으로 평균적인 부를 쌓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부/소득비율이 5일 때와 9일 때를 비교해보라. 비율이 5이면 평균적인 부를 쌓기 위해 5년치 소득을 모으면 되지만, 비율이 9로 올라가면 9년치 소득을 모아야 한다. 부/소득비율이 높은 사회에서는 일정 수준의 부를 쌓기 위해 더 오래 더 많이 소득을 모아야 한다. 쌓아놓은 게 별로 없어 소득의 대부분을 일해서 버는 보통 사람들의 삶은 녹록지 않다. 그런데 부/소득비율이 올라가는 동안 자본소득분배율도 상승했다. 노동소득분배율이 하락했다는 것인데, 이는 소득 가운데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몫이 줄어든 것을 뜻한다. 부/소득비율이 상승하는 가운데 부에서 창출되는 소득이 노동의 대가로 창출되는 소득보다 상대적으로 더 커진 것이다. 선진국은 1980년대 초부터,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논리적으로만 보면, 소득 가운데 자본의 몫이 커지고 노동의 몫이 작아진다고 해서 소득분배가 나빠지는 것은 아니다. 한 개인의 소득 안에는 자본소득도 있고 노동소득도 있기 때문이다. 노동소득도 불평등하게, 자본소득도 불평등하게 분포돼 있지만, 현실적으로 자본소득은 노동소득에 비해 훨씬 더 불평등하게 분포돼 있다. 이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통계 자료로 언제나 입증되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상위 10%가 차지하는 부의 점유율은 유럽에서는 60%가 넘고 미국에서는 70%가 넘는다. 부의 집중도가 이미 높은 현실 세계에서 자본소득분배율의 상승은 개인별 소득분배를 악화시킨다.

그렇다면 지난 수십 년간 부/소득비율과 자본소득분배율이 동반 상승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에 대한 답은 논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쉽지 않다. 일단 피케티가 설명한 방식을 살펴보자. 자본주의 경제에서 항상 성립하는 관계, 즉 그가 '제1법칙'이라 부른 수식은 'α=r×β'이다. 자본소득분배율=자본수익률×부/소득비율. 얼핏 β가 상승하면 α도 상승할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β가 상승할 때 r가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축적된 자본 또는 부의 양이 많아질수록 수확체감의 법칙이 작용해 자본수익률이 하락한다. 따라서 β가 상승하는 동시에 r가 하락하면 α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바로 이 대목에서 경제학자들도 골치 아파하는 '대체탄력성'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대체탄력성이 1보다 크면 β가 상승할 때 α도 상승하지만, 대체탄력성이 1보다 작으면 β가 상승할 때 α는 감소한다. 대체탄력성의 크기에 따라 부/소득비율의 상승이 자본소득분배율을 높일 수도 있고 낮출 수도 있다.

논쟁과 비판 쏟아지는 '대체탄력성'

엄밀한 정의는 제쳐두고 대체탄력성이 대략 어떤 개념인지 설명해보자. 노동과 자본을 투입하고 결합해 소득을 창출한다고 할 때, 때로는 노동을 더 많이 투입하는 방식, 때로는 자본을 더 많이 투입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과 자본의 비중을 자유자재로 선택할 수 있는 생산기술, 즉 노동과 자본을 서로 쉽게 대체할 수 있는 유연한 생산기술을 가지고 있을 때 노동과 자본 간의 대체탄력성이 높다고 말한다. 그리고 구체적인 수치인 1을 기준으로 1보다 높으면 탄력적이고 1보다 낮으면 비탄력적이라 한다. 피케티는 이 대체탄력성으로 부/소득비율과 자본소득분배율의 동반 상승을 설명하는데, 특히 생산기술이 탄력적인 경우를 상정했다. 즉, 대체탄력성이 1보다 클 때 r의 하락보다는 β의 상승이 더 커서 α가 상승하는데, 역사적으로 관찰되는 추세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조금 더 차근차근 설명해보자. 경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본이 축적되고 노동의 생산성이 증가한다. 노동생산성 증가는 임금(w) 상승으로 이어지지만, 축적된 자본의 양이 많아지면서 자본수익률(r)은 떨어진다. 자본수익률은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비용이므로 노동비용이 자본비용보다 상대적으로 비싸진다(r/w의 하락). 따라서 생산자는 자본(K)에 비해 노동(L)을 상대적으로 적게 사용하길 원한다(K/L의 상승). 문제는 어느 정도 변경시킬 수 있는가인데, r/w가 1% 하락할 때 K/L를 1% 넘게 증가시킬 수 있는 유연한 경우가 대체탄력성이 1보다 큰 생산기술이다. 이 경우에는 r/w가 1% 하락했음에도 K/L가 1% 넘게 증가했으므로 r/w에 K/L를 곱한 값은 상승한다. 그런데 이 값은 바로 rL/wL, 즉 자본소득/노동소득비율이므로, 분배 측면에서 노동소득에 비해 자본소득이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진다. 피케티는 경제학에서 사용되는 구체적이고 복잡한 생산함수를 예로 들었지만, 관통하는 원리는 이와 같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기업은 단위당 비용이 높아진 노동은 가능한 적게, 단위당 비용이 낮아진 자본은 가급적 많이 사용하려 한다. 대체탄력성이 1보다 큰 유연한 생산기술하에서는 총노동비용에 비해 총자본비용이 더 많이 증가한다. 분배 측면에서 보면 자본의 몫이 커지고 노동의 몫은 줄어드는 것이다.

부/소득비율과 자본소득분배율의 동반 상승에 대한 피케티의 설명은 전적으로 1보다 큰 대체탄력성에 의존한다. 논리적으로는 문제가 없으나, 바로 이 때문에 논쟁과 비판이 쏟아질 소지가 있다. 피케티는 주요 선진국에서 대체탄력성이 1.25 정도로 추정된다는 최근의 한 연구(Karabarbounis and Neiman, 2014, < quarterlyJournal of Economics > )를 예로 들었지만, 수많은 선행연구들과 비교할 때 이 수치는 이례적으로 높은 추정치에 속한다. 대부분의 연구는 대체탄력성이 1보다 작거나 1에 근접한 수준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필자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2000년 이후 한국에서 관찰되는 부/소득비율과 자본소득분배율의 동반 상승을 대체탄력성으로 합리화하기 위해서는 그 수치가 민간부 기준으로 2.5, 국부 기준으로 1.9 이상이 되어야 한다. 현재의 생산기술이 이 정도로 유연해졌다고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부/소득비율이 상승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상응해 관찰되는 자본소득분배율의 급격한 상승을 생산기술의 변화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물론 정보통신기술(ICT) 자본의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에 따라 대체탄력성이 상승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이는 면밀한 추정을 필요로 하는 과제다. 독점력이나 협상력 등 피케티가 언급하지 않은 별도의 요인을 추가로 고려해야만 종합적인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한국의 대체탄력성, 독점력 등 고려해야

피케티 저서의 근간을 이루는 기조는 상당히 진보적이다. 그러나 그는 분석틀만은 가급적 주류 경제학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인지 자본소득분배율 문제도 대체탄력성이란 개념만으로 간결하게 설명하고 넘어가려 한 듯하다. 그는 책 제목에서 연상되는 카를 마르크스와의 연관성에 대해선 극구 부인한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 얘기도 꺼내지 않는다. 분명 천재다. 불평등으로 귀결되는 자본주의 동학을 보수주의 경제학의 분석틀로 증명해 보였으니 말이다.

주상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출처: http://finance.daum.net/rich/news/finance/main/MD20140704150011527.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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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기지촌에는 인신매매되어 오게 된 미성년 여성들도 다수 있었다. 하지만 국가는 이런 상황에 눈을 감았다. ‘미군에게 접대 잘해달라’는 교육만 진행했다. 교육에 나선 공무원들은 기지촌 여성들을 ‘달러를 벌어들이는 산업역군’이라 치켜세웠다. 1970년대 동두천의 기지촌 풍경. <한겨레> 자료사진

[토요판] 커버스토리
기지촌 여성 김정자의 증언

▶ ‘우리가 괜히 나섰다가 일본 우익들만 좋은 일 시키는 거 아닐까?’ 미군 기지촌 여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할 때 가장 큰 고민이 이거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정부가 미군을 위한 위안시설과 여성들을 관리했다고 폭로하고 나섰습니다. 국가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진실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잘 몰랐던 미군 기지촌의 불편한 비밀들. 김정자씨의 증언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김정자(가명)입니다. 올해 예순넷입니다. 큰 지병은 없지만 요즘 무릎관절이 좀 아픕니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오늘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 이렇게 인터뷰에 나섰습니다. 저는 미군 위안부였습니다. 기지촌으로 인신매매되어 평생을 미군한테 당하면서 억울하게 살아왔지만 아무도 저와 제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자발적으로 일한 거 아니냐는 색안경만 끼었어요.

 

우리가 미군한테서 벌어들인 달러로 나라를 이렇게 일으켜 세웠는데, 그때는 우리더러 ‘애국자’라 그러더니 국가는 우리의 존재를 모른 척하고 있어요. 우리는 늙고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저의 언니들(기지촌 동료)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더는 못 보겠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냈습니다.

 

우리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왜 국가에 이런 싸움을 시작하는지 저의 인생을 통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소송에 참여한 여성 122명이 다 김정자씨와 같은 경험을 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피해의 구조가 비슷한 여성들이 상당하다. 김정자씨의 증언을 대표적으로 살펴보되, 기지촌에서의 경험은 여성마다 다르다는 점을 밝힌다.

 

미군 기지촌에서 미군과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은 미군 위안부, 기지촌 여성, 특수업태부, 양공주 등으로 불려왔다. 정부는 위안부와 특수업태부를 혼용해 사용해왔다. 1957년 제정된 ‘전염병 예방법 시행령’ 제4조에서 규정한 ‘위안부’는 1969년의 개정 법률에서 그대로 사용되다가 1977년 개정 시 삭제된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까지도 시·군 공무원들은 미군 기지촌 여성들을 한국 남성과 성매매를 하는 윤락여성과 구분해 위안부라고 불렀다.(<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 39쪽)

 

1950년대 전쟁통에 아버지 잃고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하다
돈을 벌 수 있다는 친구 꾐에
열여섯에 집을 나와 찾아간
그곳에서 지옥은 시작되었다

“그 시절에도 성매매는 불법
미군 기지촌만 합법이었어요
공무원들은 한달에 한번씩
‘미군한테 서비스 잘하라’며
애국자라 치켜세워줬어요”

 

스무살로 위장시키는 포주…하루 서너명씩 받아

 

“저는 1950년 1월에 태어났습니다.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모르지만 어렸을 때 천안에서 살았어요. 친아버지는 군인이었는데 전쟁통에 저를 보러 왔다가 탈영병이 되어서 헌병한테 잡혀갔어요. 그냥 맞아서 죽었다는 얘기만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나중에 재혼했어요.

 

제가 열두살 때쯤부터인가 제 의붓아버지는 어머니만 없으면 저를 겁탈했어요. 의붓오빠들도 저를 건드렸어요. 그걸 어머니께 말도 못 하고 꾹 참다가 열여섯살 때(1965년께) 집을 나와버렸어요. 제 초등학교 친구가 있었어요.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거예요. 방직공장이라고 했어요. 걔를 따라 서울역까지 기차 타고 왔어요.

 

서울역에서 친구 따라 또 어딘가로 갔는데 뭔가 이상한 거예요. 방직공장은 안 보이고 미군들만 길에서 ‘쌀라쌀라’ 거리면서 돌아다니더라고요. 어떤 집으로 들어갔는데 집에 ‘남바’가 붙어 있었어요. 1호실, 2호실, 3호실 이렇게. 저는 여관인 줄 알고 잤어요. 제 친구는 다음날 잠깐 어디 좀 다녀오겠다고 하더니 안 왔어요.

(50대로 보이는) 어떤 아줌마가 나타났어요. 나보고 따라오래요. 공장에 데려다 주려나 보다 싶어 따라갔어요. 그런데 저더러 하는 얘기가 ‘네 친구가 빚을 안 갚고 도망갔으니 네가 갚아라’고 하는 거예요. 얼마인지는 얘기도 안 해주고, 친구 대신 돈을 갚아야 제가 나갈 수 있다고 했어요. 어떻게 돈을 버냐고 물었어요. 밤에 언니들 따라가 보면 안다고 했어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제가 간 곳은 파주 용주골(연풍리)이라는 데였어요. 미군기지 주변에서 여자들이 몸 파는 곳이었어요. 제 친구가 빚을 갚지 못해 저를 팔아넘긴 거였어요.”

 

김정자씨는 인신매매를 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이해하기에는 김정자씨의 당시 나이가 너무 어렸다. 친구의 행동이 원망스러웠지만 김씨는 하는 수 없이 친구의 빚을 갚기로 결심했다.

 

“아줌마(포주)는 저더러 클럽 나가서 손님(미군) 데려오라고 했어요. 저는 3일인가 있다가 그 포주집에서 도망갔어요. 근데 골목에서 잡혀버렸어요. ‘뒤지게’ 맞았어요. 한번만 더 도망가면 섬으로 끌고 가서 죽여버린다고 했어요.

 

(포주가) 파스 갖다 붙여주고 세코날(진정제)을 줬어요. 기분 좋게 해주는 거라면서 줬어요. 하나 먹으면 (중독되어서) 두개 먹어야 하고, 세개 먹으면 네개 먹게 돼요. 손님 데리고 오라고 내보내면 제가 무서워서 말을 못 붙였어요. 맨정신으로는 창피해서 손님 못 끌어요. 저는 그 약이 뭔지도 모르고 계속 먹었어요.”

김씨는 나중에 이것이 마약인 것을 알게 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약을 먹어야만 히파리(호객행위)를 하러 나갈 수 있었다. 김씨가 미군을 데리고 올 때까지 집(숙소)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한다. 한두달 일하면 빚을 갚을 줄 알고 김씨는 그냥 눈을 질끈 감고 기지촌에서 일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거기서 헤어나올 수가 없는 거예요. 빚은 계속 늘었어요. 방값이랑 화장품·미장원비랑 세코날비랑 내야 하는데 아무리 일해도 못 갚는 거예요. 이자는 계속 붙었어요.”

 

보통 기지촌에는 위안부 여성들의 자치조직이 있다. 자매회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기지촌에서 일을 하려면 이곳의 회원으로 등록해야 한다. 자매회에서는 뻔히 미성년자인 것을 알면서 회원증을 주고 검진증(성병에 걸리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증)을 발급해 주었다는 기지촌 여성들의 증언이 많다. 보통 포주들은 십대 아이들에게 스무살이라고 말하도록 강요했다고 한다.

 

김정자씨의 삶은 지옥과도 같았다. 보통 기지촌 여성들은 하룻밤에 미군을 서너명씩 받아야 하는 경우가 예사였다.

 

“그러면 거기(음부)가 얼마나 아픈지 몰라요. 긴밤·짧은밤(성매매 시간 단위) 아무리 해도 끝이 없었어요. 긴밤은 제 방에서 밤새 자고 아침에 일찍 가는 거고 10달러 받아요. 짧은밤은 제 방에서 30분에서 1시간 있다 가는 거예요. 돈은 모두 아줌마가 가져가 버려요. 제가 직접 못 받아요. 아줌마는 한달 계산해 준다면서 다 뺏었어요. 1~2개월이면 빚 다 갚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안 돼요.”

 

기지촌의 10대 아이들은 셈법에 밝지 못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이들이 태반이었다. 포주는 공포의 대상이라, 장부에 무엇이 어떻게 기록되는지 물어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렇게 여성들은, 아니 10대의 아이들은, 밤새 울고 밤새 미군의 노리개가 되어 고통의 몸부림을 쳤다.

 

“도망을 갈 수가 없었어요. 일하러 갈 때 늘 남자(포주집에서 일하는 건달)들을 붙여 감시해요. 목욕을 가면 자기네(포주집)에서 제일 오래 있는 년, 주인한테 아부하는 년이랑 같이 목욕을 보내요.

 

경찰한테 신고할 수도 없어요. 주인집에 경찰이 낮에 놀러 와요. 주인아줌마한테 누나라 그러면서 들어와요. 그러면 아줌마는 담배도 싸서 주고 그래요. 처음에 저는 아줌마 남동생인 줄 알았는데 옆의 언니들이 형사라고 귓속말해주는 거예요. 주인이 다 돈 먹이는 거라고. ‘경찰에 신고해도 내가 못 나가는구나’ 그걸 알게 되는 거죠. 내가 죽어서야 이곳을 나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거죠.”

 

 

한국전쟁은 이 땅의 여성들에게도 아물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미군 기지촌 여성들 122명은 국가를 상대로 피해배상 소송을 하기로 했다.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건물 4층에서 열린 소송 기자회견 모습.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왜 그토록 미군과 결혼하려고 했는가

 

“한번은 그래도 용기를 내어서 도망갔어요. 용주골에 인신매매되고 몇개월 뒤였어요. 파출소로 들어갔어요. 40대쯤 되어 보이는 경찰이 ‘왜 남의 빚 져놓고 도망가냐. 안 갚으면 영창 간다’고 하는 거예요. 포주들이 경찰서에 다 돈을 집어주던 시대였어요. 하는 수 없이 다시 포주집으로 돌아갔지요. 골방에 갇혀 또 뒤지게 맞았어요.”

 

김정자씨는 죽어서 절대 산에 묻히고 싶지 않다. 그가 산에서 겪은 고통스런 경험 때문이다.

 

“산에 가서 미군을 받아야 할 때가 제일 무서웠어요. 부대에서 훈련을 나가면 저희도 따라가야 했어요. 밤에 컴컴해지면 담요 하나 들고 아줌마 따라서 가요. 아줌마가 보초 서는 미군이랑 솰라솰라 말해요. 그럼 훈련 장소로 들어갈 수 있었어요.

 

총 들고 서 있던 놈들이 막사에 가서 여자들하고 잘 사람 나오라고 말해요. 이식스, 세븐(E-6는 하사, E-7은 중사)들도 다 했어요. 장교들은 특별히 막사 안에서 해요. 일반 병사들은 훈련장 안에 나무 있는 데에 담요 깔아놓고 하거나 구덩이를 파놓고 해요. 미군들이 파놓은 구덩이지요.”

 

기지촌 여성들은 그렇게 훈련장에까지 불려 가 ‘하늘을 지붕 삼고, 땅을 담요로 삼고’ 미군을 받았다. 제대로 씻을 시간도 없었다. 돈을 벌어서 내려가야만 포주가 혼을 내지 않는다. 어떤 미군은 돈 대신 자신들이 먹는 말라붙은 밥을 던져주어 여성들을 애타게 했다. 여성들은 한번 훈련장에 가면 그곳에서 새벽까지 보내다 돌아왔다고 한다.

 

안전한 성관계는 기지촌 여성들에게 보장되기 어려웠다. “어떤 미군은 콘돔을 안 끼고 해요. 우리는 거절을 못 해요. 그래서 낙태도 참 많이 했어요. 뗀 애만 열일곱이에요.”

 

보건소는 포주들이 끌고 갔다. 강제로 낙태시키는 것이다. 창자까지 다 빠져나오는 고통을 견디며 여성들은 낙태 수술을 견뎠다. 낙태 이후에는 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파도 또 일하러 가야 했다. 포주들은 낙태 수술로 상한 몸을 보살필 시간도 주지 않았다. 약과 찬물 한컵 정도 들이켜고 다시 일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하루 그냥 쉬면 빚이 얼마나 늘어날지 알 수 없었다.

 

“이러고 살아야 하니 죽고 싶은 생각만 들지요. 기지촌에서는 한달이면 두세번은 장례를 치러야 했어요. 철길로도 뛰어들고 연탄불 피워놓고 그 가스도 먹고. 저도 세번 죽으려고 시도했어요. 그런데 무슨 놈의 팔자인지 다 깨어났어요.”

김정자씨는 죽으려 해도 죽지 못했다. 공동묘지에서 자살을 기도하면 묘지 관리인이 발견하고, 집에서 동맥을 끊으면 자신을 보러 온 미군이 발견하곤 했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젊은 사람이 왜 죽으려 하느냐’고 묻곤 했다. 김씨는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왜 우리들이 미군하고 그렇게 기를 쓰고 결혼하려 했는지 알아요? 그게 아니면 여기를 탈출할 방법이 없었어요. 빚을 갚을 방법이 없어요. 도망가려 해도 경찰 누구도 안 도와주고. 우리에겐 국가가 없었어요.”

 

아니, 국가는 있었다. 미군한테 성접대 잘하라고 교육하는 국가는 있었다. 자매회 회의가 한달에 한번씩 열리면 여성들은 참석해서 교육받아야 했다. 안 그러면 영업을 못 했다. 회의에 가면 헌병, 시아이디(C.I.D. 미군부대 범죄수사과), 보건소 직원, 경찰서장, 군청 공무원들이 모두 와 있있다. 미군은 슬라이드(필름)를 이용해 성병에 대해 설명했다. 여기까지는 그들의 할 일이라고 이해할 법하다.

 

파주 용주골에 팔려간 뒤
동두천·군산·평택 전전
40대 중반에 기지촌 빠져나와
도망가고 싶어도 붙잡힐까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미군부대에서 훈련 나가면
저희도 산에 따라가야 했어요
그때가 가장 무서웠어요
산에서 안한다고 반항하다가
죽은 아가씨들도 있어요”

 

‘토벌’당한 성병 의심자들, 언덕 위 하얀 집으로

 

하지만 공무원들은 이상한 교육을 더 했다.

“나와서 늘 하는 말이 이거예요. ‘아가씨들이 서비스 좀 많이 해주십시오. 미군한테 절대 욕하지 마십시오. 바이 미 드링크(Buy me drink. 술 사주세요) 하세요. 그래야 동두천에 미군들이 많이 옵니다. 우리나라도 부자로 한번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군수는 저희더러 달러 벌어들이는 애국자라고 치켜세웠어요. 그러면 저희는 그래야 되나 보다 하는 거예요.”

 

일종의 정신교육 같은 것이었다. 여성들은 왜 이런 교육을 받아야 되는가 싶었지만 국가가 노후를 책임져준다고 하니까 그런대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턱걸이(동두천시 광암동 일대)에다가 공장을 짓고 아래층에는 가발공장, 위에는 기숙사로 만든다고 공무원들이 설명했어요. 나이 먹으면 여기에 우리가 살 수 있다고 군수가 그랬어요. 땅을 다 사뒀다고. 그러니 열심히 달러 벌라고. 우리는 늙어도 갈 데가 있구나 하고 그렇게 믿었어요. 하지만 그 약속이 지켜진 건 하나도 없지요. 포주들은 저희가 벌어온 돈으로 집도 사고 땅도 샀는데. 어떤 악명 높은 포주는 나중에 경기도의원이 되더군요.”

 

경찰은 인신매매되어 팔려온 아이들을 구출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성병에 걸린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잡아가는 것에만 관심을 두었다. 잡아가는 것도 비인간적이었다.

 

“성병 걸린 미군이 찾아와 칸택(contact·미군 성병환자에게 성병을 감염시켰을 것으로 의심되는 여성을 찍는 것)을 하면 그냥 끌려가요. 찍히면 가는 거예요. 그 미군이 어디서 성병 옮아갖고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는 그걸 토벌당한다고 불렀어요.”

 

‘토벌당해’ 파출소에 끌려가면 유치장에서 머문 뒤 곧바로 낙검자 수용소로 옮겨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성병이 있거나 없거나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고 한다. 성병이 있다 하더라도 그냥 환자일 뿐인데 죄인처럼 다루어졌다.

 

“하얀 집(동두천시 소요산 아래 낙검자 수용소를 기지촌 여성들은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고 불렀다.) 가면 운동장이 크게 있는데 토벌당한 여자들 실려 오면 (건물 문을) 철커덕 잠그고 꼭 교도소 같았어요. 나갈 수 없어요. 화장실만 갈 수 있게 했어요. 유치장 같은 데서 다섯명씩 자야 해요. 바깥 창문은 쇠창살이 설치돼 있고 면회 와도 쇠창살 사이로 얼굴 보면서 얘기해야 했어요. 아니, 우리가 죄인이에요? 환자를 왜 죄인 취급했는지 이해가 안 돼요.”

 

성병에 걸린 미군에게 무슨 조처를 했는지는 여성들에게 통보되지 않는다. 오로지 국가는 미군을 상대하는 여성의 몸을 깨끗하게 만드는 데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비쳤다.

 

“우리는 페니실린을 맞았어요. 그거 맞고 쇼크 때문에 죽은 사람도 있어요. 맞으면 걸음을 못 걸어요. 엉덩이 근육이 뭉치고 다리가 끊어져 나가는 거 같아요. 그걸 이틀에 한번 맞아요. 괴로운 언니들은 옥상에 올라가 떨어져 죽거나 반병신 되고 그랬어요. 저는 하얀 집에 (1982년께) 2주 동안 붙잡혀 있다 나왔어요.”

 

김정자씨는 (1965년께) 파주 용주골에 팔려 간 뒤 동두천, 용산, 군산, 평택과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40대 중반(1990년대 중반)에야 기지촌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스물다섯 때(1974년께) 기지촌에서 한번 도망 나왔지만 다시 동두천 기지촌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어디를 도망가더라도 깡패를 보내 저를 잡으러 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또 어디 공장에 취직하려면 제 신분증을 제출해야 하는데 제가 동사무소 가서 주민등록증 발급받으면 포주집에 진 빚 때문에 경찰이 저를 잡으러 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김씨는 ‘스스로 기지촌에서 살아온 여성들을 피해자라고 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니네들이 좋아서 (기지촌 생활) 했는데 뭐가 불만이냐는 그런 질문을 참 많이 들어요. 한국 정부가 미국 안 끌어들였으면 우리가 이렇게 되었겠어요? 알고 봤더니 그 시절에도 성매매 행위는 법으로 금지돼 있었더라고요. 미군 기지촌만 성매매가 합법이었어요. 박정희 정부가 왜 그런 법을 만든 걸까요. 저는 잘 모르지만 미군 붙잡아 두려고 그렇게 한 거 아니겠어요? 우리더러 달러 벌게 하려고.”

미군 기지촌의 형성 과정에 국가의 어떤 정책이 영향을 미쳤고 그것이 옳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스무살도 안 된 소녀들이 기지촌에 팔려 오고, 그곳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국가가 계속 방치했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 없이 국가의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김씨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믿는다.

 

‘식모 자리’ 알아봐준다고 따라가면 기지촌

 

 

“억울해 죽겠어요. 저같이 거기 인신매매되어 간 사람이 너무 많아요. 직업소개소에서 식모 자리 알아봐준다고 해 따라가고, 밥 준다고 따라가고 해서 가 보니 기지촌인 경우들이 너무 많았어요. 미군 위안부로 살 줄 알았다면 누가 거기 따라갔겠어요.

 

일본군 위안부도 인신매매되어 간 사람이 많다고 들었어요. 일본군 위안부는 피해자로 인정하는데 왜 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국가가 눈감고 있는 건가요. 당한 사람은 있는데 왜 책임지는 사람이 없냐고요. 당신 딸들이 붙잡혀 간 거라면 가만히 있겠어요? 언니들이 늙고 병들어 죽어가고 있어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다가 벌써 세분이나 돌아가셨어요. 저는 사과를 원해요. 늙고 병든 우리 몸뚱어리를 국가에서 책임져주기를 바라요. 그게 국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믿어요.

 

하늘에 있는 우리 (기지촌) 언니들을 위해서 제가 이렇게 나섰어요. 누군가는 증언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용기를 냈어요. 사람들이 우리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었으면 좋겠어요. 제발 잘 좀 보도해 주세요.”

 

김정자씨는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기까지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그의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지난달 20일 약 4시간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할 때 그는 계속 눈물을 흘렸다. 30분 증언하다 10분 울고, 30분 증언하다 다시 10분 우는 것이 반복됐다. 낙검자 수용소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고백할 때는 구토를 하기도 했다.

 

인생 전체가 국가가 간섭한 성폭력으로 얼룩져 있던 그에게 이번 인터뷰는 그렇게 힘든 과정이었다. 따라서 인터뷰 때 자세한 내용을 묻지 않고 최소한의 질문만 하려고 노력했다. 대신 김씨와 진행한 인터뷰와 그의 증언록 <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2013)의 내용을 종합해 이 글을 썼다.

 

김정자씨는 인터뷰 뒤 바닷가로 가 새움터(기지촌 여성 지원 운동을 벌이는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다음날까지 통곡했다고 한다. 힘든 인터뷰를 결심해준 김씨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김정자씨는 현재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최소한의 생활비를 번다. 그를 부양하는 가족은 없다. 대신 새움터의 도움을 받고 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45563.html?_ns=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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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율과 경제성장률은 장기적으로 ‘정’의 관계를 갖는다. 투자를 꾸준히 많이 한 나라는 자본 축적이 빨라지고 성장률도 높다는 얘기다.

그중에서도 중국은 독보적으로 높은 투자율과 성장률을 기록했다. 지난 20년 동안 평균 투자율은 무려 37%였으며, 같은 기간 평균 경제성장률은 10.4%다.

투자율이 높을 때 성장률도 함께 올라가는 이유는 뭘까. 대부분의 저개발국은 투자율이 매우 낮은 수준이고 따라서 성장률도 낮다. 그러다 어떤 계기를 통해 투자가 늘기 시작하면 생산을 위한 자본이 축적되고 경제 전체의 생산량이 늘기 시작한다. 본격적인 경제 성장이 시작되는 것이다.

한국도 한동안 이런 식으로 고성장을 경험했다. 하지만 자본 축적, 즉 투자만으로 성장률이 계속 높게 유지될 수는 없다. 자본 축적이 어느 정도 이뤄지면 더 이상 자본 축적을 할 곳이 마땅해지지 않으면서 자본의 생산성도 떨어진다. 성장 초기에는 고속도로와 같은 자본이 생산에 매우 높은 기여를 하지만 고속도로가 점점 더 많이 건설되면 새로운 고속도로의 생산 기여도는 점점 떨어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 투자율이 20%보다 낮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도 선진국에 근접해 감에 따라 투자율과 성장률이 낮아지고 있다.

이런 면에서 중국은 자본 축적의 효율성이 가장 높고 이에 따라 성장률도 가장 높은 지점을 통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최근 중국에 이상 징후가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최근 7년만 보면 투자율은 증가했는데 오히려 경제성장률은 떨어졌다. 중국은 2007년만 해도 투자율 39%에 경제성장률은 14%가 넘었다. 하지만 2012년 투자율은 47%로 증가한 반면 경제성장률은 7.8%에 지나지 않았다. 2013년 들어 더욱 악화돼 투자율이 50%를 훌쩍 넘어섰는데도 불구하고 경제성장률은 7.7%에 불과했다.

최근 중국의 투자율이 높은데도 성장률이 낮은 이유는 투자 비효율성이 급격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중국 경제에서 비중이 높은 공기업은 민간기업에 비해 효율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권력기관과 밀착돼 있는 기업에 은행 대출이 집중되면서 제대로 된 투자를 행할 기업에는 자금이 흘러가지 않고 있다.

중국의 최근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20여년 전 한국 경제의 모습이 떠오른다. 1990년대 들어 한국 경제는 투자의 효율성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었다. 은행은 정부가 결국은 책임져줄 것으로 믿고 부도 직전의 재벌기업에도 계속적으로 자금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 투자율은 높아졌지만 비효율성 증가로 경제성장률은 오히려 낮아졌다. 정부는 어떻게 해서든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해외 자본 시장 개방이라는 방식으로 자금을 외부에서 끌어들일 여건을 마련해 줬고, 부도 직전의 재벌기업은 해외 차입으로 비효율적인 투자를 늘렸다. 그 결과는 우리가 다 알듯이 1997년 외환위기다.

며칠 전 한 회의에서 중국 경제 전문가가 중국은 절대로 위기를 맞을 수 없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그 근거로 중국의 저축률이 높고 외채가 거의 없으며 경상수지가 흑자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때 그 이야기를 들은 일본 학자는 일본도 정확히 그런 상태였지만 1980년대 후반 위기가 시작됐다고 반박했다. 중국 경제의 독보적인 경제성장 시기는 이제 저물어가는 듯하다. 7%대 성장을 당연시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경제성장률에 더 급격한 조정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중국의 경제성장률 하락으로 가장 타격을 받을 국가 중 하나는 다름 아닌 한국이다.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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