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모음/경제 일반 2013. 2. 14.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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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토리&스토리 - 세기의 라이벌 (51·끝) 푸르덴셜 - AIG

불황기 구세주 푸르덴셜


서민 돕는 금융상품 개발, '1주일 3센트' 간이보험 돌풍…1

 

40년 동안 보험업계 이끌어

중국서 시작한 AIG

철저한 현지화 전략 채택…보험모집인 유통채널 구축…

 

금융위기때 공적자금 받아

 

푸르덴셜과 AIG는 미국을 대표하는 보험회사다. 창업자 존 드라이든(푸르덴셜)과 코넬리우스 스타(AIG)가 명문대를 중퇴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하지만 두 기업의 성장 과정은 확연히 달랐다. 남북전쟁 이후 황폐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푸르덴셜은 미국 위주로 보험사업을 벌였다. 반면 AIG는 처음부터 해외에서 영업을 시작했다. 푸르덴셜이 미국 경제가 내적으로 크게 성장했던 1870년대에 설립됐고 AIG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화 물결 속에 탄생한 것도 두 회사의 성장 경로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드라이든, 소외계층 대상 보험영업

1839년 미국 메인주 템플시에서 태어난 드라이든은 스타가 태어나기도 전인 1875년 투자자들의 돈을 끌어들여 푸르덴셜공제조합을 설립했다. 그가 보험사업을 시작한것은 ‘금융상품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는 없을까’하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드라이든이 보험에 뛰어든 시기는 남북전쟁 이후 경제공황이 휩쓸던 때였다. 소외계층의 평균 수명은 짧았다. 보험의 손길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했다. 보험은 당시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

그는 예일대에 다닐 때 ‘노동자 보험’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을 정도로 서민계층에 관심이 많았다. 이후 대학을 중퇴하고 보험공제조합을 설립한 뒤 수년간 여러 공장을 찾아다니며 영업을 했다. 그가 내건 슬로건은 ‘과부와 고아를 돕자’였다.

드라이든은 ‘1주일에 3센트’ 보험을 처음 선보였다. 노동자가 사망하면 장례라도 제대로 치러주자는 상호부조의 뜻을 담았다. 보험금액이 적고 계약 절차가 간단한 간이보험(industry insurance)이었다.

그는 1877년 사명을 푸르덴셜보험으로 바꿨다. 이듬해 보험 가입자 수는 7만명을 돌파했다. ‘공동체를 받드는 기본 원리인 인간의 존엄성과 가족 사랑을 지킨다’는 드라이든의 창업 이념은 1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한번도 변하지 않은 푸르덴셜생명의 정신이 됐다. 드라이든은 금융회사의 사회공헌에 평생 관심을 가졌다. 회사의 기반이 됐던 뉴저지주 발전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철로를 까는 일이나 은행 설립에도 관여했다.

드라이든이 1911년 폐렴에 걸려 사망하자 당시 뉴욕타임스는 ‘간이보험의 아버지를 잃었다’고 애도했다. 그는 글로벌 펀드인 피델리티의 창업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스타, 중국서 보험사업 시작

1892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스타는 캘리포니아대 법대를 1년 만에 포기했다. 대학에서 4년이나 지내야 한다는 것이 아깝다는 이유였다.

그는 학교를 그만둔 뒤 아이스크림 가게를 열었다. 지역 주간신문도 발행했다. 그러면서 매일 오전 4시30분에 일어나 법률을 공부했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져 군에 징집됐을 때도 스타의 ‘끼’는 유감없이 발휘됐다. 군복 세탁업자가 폭리를 취하자 배달용 차량을 직접 빌려 군부대와 멀리 떨어진 세탁소와 계약해 매달 400달러씩 벌었다.

스타가 해외로 나간 것은 26세 때였다. 그는 중국 상하이행 증기선에 올랐다. 상하이는 당시 인구 300만명의 거대 도시였다. 외국인에게도 관대했다. 중국법은 외국인의 회사 설립에 별도의 제한을 두지 않았다.

스타는 1919년 12월19일 중국인 직원 2명과 함께 ‘아메리칸아시아틱언더라이팅(AAU)’이라는 이름의 보험대리점을 열었다. AIG의 첫발을 내디딘 순간이었다.

그는 중국에서 보험업의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중국인들은 자손에게 물려줄 재산과 상속에 강한 집착을 갖고 있었다. 스타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해 가짜 돈을 태우는 모습을 보고 생명보험 상품이 잘 팔릴 것으로 생각했다. 당시 중국에 있는 보험회사 대부분은 은행처럼 사무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스타는 ‘발로 뛰는 영업’으로 차별화했다.

스타는 대리점을 시작한 지 불과 2년 만에 생명보험사를 직접 설립했다. 보험대리점이 아닌 독립적인 보험모집인을 통해 상품을 판매하는 유통 채널을 구축해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현지인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자오파시우란 이름의 중국인은 스타를 찾아와 보험중개인을 자청했다. 자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스타는 은행 대출을 다 갚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스타는 이때부터 ‘현지에 진출했을 땐 현지인을 중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AIG 90여년 역사의 관행으로 굳어졌다.

폐기종으로 고생하던 말년에 그는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극동아시아 여행을 준비하다 세상을 떠났다. 1968년, 당시 76세였다.

◆서로 다른 성장 과정

푸르덴셜생명은 드라이든 사후에도 계속 성장했다. 1923년 퇴직연금 시장에 첫 진출한 뒤 증권 은행 투자관리 부동산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했다. 2001년 푸르덴셜파이낸셜로 명칭을 바꾸고 주식회사로 전환했다. 회사를 설립한 뒤 커다란 슬럼프 없이 꾸준히 성장해온 모범생 스타일이었다.

반면 AIG는 여러 나라에서 사업을 벌이는 금융회사답게 위기를 자주 겪었다. 첫 번째 위기는 1949년 중국 공산화였다. 본사를 미국으로 옮겨놨지만 영업의 중심은 여전히 중국이었다. 스타는 중국이 공산화되자 지역본부를 홍콩으로 옮기면서 비행기 3대를 전세내 40여명의 직원과 가족을 이주시켰다. 6·25전쟁 때 미군과 중공군이 뛰어들어 싸우게 되자 AIG는 미국계 회사라는 이유로 중국 내에서 보험영업을 계속할 수 없게 됐다.

AIG는 중국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법인세와 소득세 등 세금을 중국 정부에 납부하지 못했다. 적성국가에 돈이 흘러가서는 안 된다는 미국 정치권의 압력 때문이었다. 중국 정부는 이를 빌미로 AIG의 현지 경영진을 감옥에 가두기도 했다. AIG가 내지 못한 세금을 완납한 시기는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 이후였다.

AIG는 우여곡절 끝에 1992년 외국 회사로는 처음으로 중국 정부의 정식 인가를 받아 현지에 복귀했다. 1998년에는 AIG 창업자인 스타가 초창기 본부 건물로 쓰던 빌딩을 수리해 재입주했다.

AIG는 중국에서 겪었던 일을 쿠바에서도 똑같이 겪었다. 피델 카스트로가 1959년 정권을 잡자 스타는 현지직원 70명을 미국으로 이주시켰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분기점

정말 큰 위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들이닥쳤다. AIG는 당시 세계 85개국에서 손해보험사업을, 70개국에서 생명보험사업을 하는 세계 최대 보험사였다. 10만여명의 직원이 매출 1132억달러, 순이익 140억달러의 실적을 내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보험제국’이었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을 담보로 발행한 부채담보부증권(CDO)에서 거액의 부실이 생겨 부도 직전까지 내몰렸다.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Fed)에서 1823억달러(약 200조원)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아야 했다. 이후 AIG는 수차례 구조조정을 통해 ‘AIG’라는 지주회사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아시아지역 보험사업부도 매각(지금의 AIA)해야 했다. AIG는 요즘 손해보험 자회사인 차티스손보를 키우는 데 주력하고 있다.

반면 푸르덴셜생명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을 받지 않은 채 140년 역사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 30여개국에 자회사를 두고 있다. 이 회사가 관리하는 자산은 지난 6월 말 기준 9610억달러에 달한다. 전 세계 직원 수는 5만여명이다.

미국 푸르덴셜생명보험이 작년 2월 AIG의 일본 자회사를 420억달러에 매입한 것은 두 회사의 현재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푸르덴셜은 2006년 금융사로는 이례적으로 ‘비즈니스위크 50대 기업’에 선정됐고, 올초 경제 전문지 포천의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생명보험부문 1위에 올랐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알림=‘스토리&스토리’는 이번 회로 종료됩니다. 다음주부터는 시대를 꿰뚫어본 경제학자들의 삶과 사상을 조명하는 시리즈가 실립니다. 집필은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가 맡습니다. 이 시리즈는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출처: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2090799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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