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기업 편들기' 정책으로 일관해
재벌 살찌고 가계는 가난해져
노동소득분배율 낮아지고
저임 노동자 비율 OECD 최고
고용안정·채무재조정 통해
가계 살려야 경제 선순환 가능
경제 위기론의 실체|염치없는 위기론
"한국이 저성장 국면으로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죠. 그런데 (2010년) 경제가 6% 성장할 때는 중산층과 서민이 체감하는 경기가 괜찮았나요?"
"수출이 잘될 때 과실을 나눠주지 않았는데, 이제 수출이 안 좋아지니 가계가 힘들더라도 다시 돌파구를 뚫어달라고 하면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요?"
한국 경제 위기론에 대한 증권가 이코노미스트들의 반응이다. 기업과 가계, 수출과 내수,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우리 경제 부문간의 심각한 불균형 현상은 소위 '진보적' 학자뿐 아니라 자본주의 첨병이라고 할 수 있는 증권사의 연구원들조차 '문제'라고 인식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 20년간 '기업 편들기' 결과는?
재계와 정부는 1980년대 말 이후 20여년 동안 한국 경제에 크고 작은 위기가 닥치거나 재벌개혁 목소리가 높아질 때마다 '위기론'을 방패로 개혁의 칼날을 피하는 한편 기업에 유리한 정책을 챙겨왔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정리해고가 도입되고 비정규직이 확대돼 인건비를 낮출 수 있었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고환율 정책으로 '환율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법인세는 지속적으로 낮아졌고, 각종 규제도 완화됐다. 수출대기업에 유리한 자유무역협정(FTA)도 연이어 체결됐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외환위기 이후 경제체질이 기업은 수익을 내고, 가계는 가난해지는 체질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런 '가계궁핍화'는 여러 지표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민소득 가운데 기업(자본)과 노동자가 가져가는 몫의 비율인 노동소득분배율은 1996년 62.6%를 고점으로 점차 낮아져 지난해에는 59%까지 내려갔다. 국민처분가능소득 가운데 법인(금융기관 포함 기업)과 개인이 각각 가져가는 몫을 보면 법인은 1996년 3.4%에서 지난해 13.6%로 급증한 반면 개인은 74.1%에서 62.5%로 낮아졌다. 15년여 사이에 대략 100조원이 개인에서 기업으로 옮겨간 셈이다. 기업과 가계의 총저축률(국민총처분가능소득 가운데 기업과 가계 각각의 총저축 비율)은 2000년 역전된 뒤 격차가 계속 벌어져 지난해에는 15.6%포인트(기업 19.9%, 가계 4.3%)까지 커졌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자료를 보면 지난 3월 현재 한국의 저임금계층(임금노동자 중위임금의 3분의 2 미만을 받는 노동자)은 전체 노동자 1742만명 가운데 442만명(25.4%)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많은 수준이다. 가계소득의 감소는 가계부채 증가, 내수위축, 자영업자 폐업 등 각종 문제로 이어진다. '정리해고·비정규직 확대→가계소득 감소, 자영업자 증가→소비위축, 자영업자 과잉경쟁→생계형 가계부채 급증'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 더이상 일방적 '희생' 안 돼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경제민주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은 이제는 일방적인 '기업 밀어주기' 정책에서 고용과 가계소득을 안정시키는 정책으로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한국 경제와 사회 전체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확산된 데 따른 것이다. 한 경제 전문가는 "이대로 가다간 기본적인 공동체 유지도 힘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 경제 난맥상을 풀기 위해서는 그동안 많은 혜택을 누려온 기업 쪽이 '과실'을 공유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유승민 삼성증권 연구원은 "미국 등 선진국은 과잉부채 문제를 통화완화 정책(돈을 푸는 정책)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지만, 기축통화국이 아닌 우리나라는 이 방법을 따르기 힘들다. 우리나라 가계부채 문제는 기업과 정부가 고통을 분담해서 해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채무재조정, 환율안정정책 등을 펴고, 기업 쪽에서는 고용보장, 임금인상 등을 양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장기적으로 경제체질을 튼튼하게 만들어 기업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은 "현대차 유보액이 30조원인데,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비용은 2800억원이면 된다. 비정규직의 소득이 올라 구매력이 높아지면 결국 기업 매출에도 도움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영호 단국대 석좌교수는 "재벌개혁은 재벌을 죽이자는 것이 아니라 가족경영, 중소기업 쥐어짜기 경영에서 벗어나 진정한 경쟁력을 갖추도록 해주자는 것이다. 분배와 복지확대도 내수를 안정시켜 성장과 기업수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안선희 기자shan@hani.co.kr
출처: http://media.daum.net/economic/others/newsview?newsid=20121111204010286&RIGHT_COMM=R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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