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장하준 '좌파 신자유주의' 비판에
"재벌 프렌들리" 반박 이어져
장하준쪽 재반박 쏟아내
박정희 체제-양극화 문제
상관관계도 팽팽히 갈려
복지국가 지향점은 동의
대선 앞두고 논쟁 커질듯
■ 대선 화두 될 경제민주화 논쟁 격화
진보진영 내부의 재벌개혁 논쟁을 일으킨 실마리는, 대척점에 있는 두 단어를 합성한 이른바 '좌파 신자유주의' 비판서였다. 문제의 책은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와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 및 운영위원, 이종태 <시사IN> 기자가 함께 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이하 선택)이다. 지은이 셋 다 진보를 자처하거나 진보적이란 평가를 받는 인사들이다. 이들의 책이 '의외로'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앞장서 외치거나 실천해온 이른바 좌파 또는 진보적 경제학자와 시민사회단체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선택은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은 낡은 화두다"라고 과감히 주장한다. 그러면서 보편적 복지의 확대를 진짜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라고 선언한다.
'선택'은 경제학의 전통적 주제였던 시장과 국가의 역할에서 국가를 우위에 둔다. 재벌 개혁론자나 시장 개혁론자 등을 포함해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진보적 학자군에 대해선 국가의 개입보다 시장을 우위에 두고 있다고 의심한다. 장하준 교수 등 3인은 "진정한 민주주의는 반드시 통제된 시장을 필요로 한다"며 "좌파 신자유주의는 자유시장의 합리성과 투명성, 효율성에 방점을 찍으면서 국가의 시장 통제와 개입에 반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택은 특히 진보·개혁 진영의 소액주주운동이 신자유주의적인 주주자본주의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장하준 등 3인의 공격적 문제제기는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책에 대한 진보진영 학계의 비판과 반박이 잇따르자, 책의 저자들 또한 방어와 재공격에 나서면서 논쟁은 한국 경제의 방향성 논쟁으로까지 확산될 조짐이다. 처음 논쟁에 불을 댕긴 이는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을 지낸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이다. 그가 지난달 13일 인터넷 매체인 <프레시안>에 선택과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쓴 '종횡무진 한국 경제-재벌과 모피아의 함정에서 탈출하라'란 두 책에 대한 서평을 올리면서 논쟁은 불붙었다. 정 원장은 서평에서 "허망하게도 '선택'은 재벌의 경영권 보호를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썼다. 그리고 '시민과 세계' 공동편집인이기도 한 이병천 강원대 교수가 <프레시안>에 장하준 등 3인의 주장에 답하는 형식의 4차례에 걸친 반박글을 띄웠다. 이 교수는 "(선택은) 주주자본주의냐 재벌이냐를 양자택일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며 "사실상 재벌 프렌들리(friendly)한 그들(장하성 등 3인)의 복지국가론"을 비판했다.
정태인 원장이나 이병천 교수의 비판에서 알 수 있듯 좌파 신자유주의, 국가와 시장,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란 다소 어려운 용어에 숨겨진 논쟁의 대척점은 한국 사회의 최대권력의 하나로 떠오른 재벌과 박정희식 개발독재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서 결정적으로 갈린다. 장하준 교수 등은 "경영권은 보장해 줄 테니, 세금을 왕창 내서 복지국가 만드는 걸 도와달라"고 말할 만큼 재벌의 경영권 보장과 복지 재원의 확보가 '타협' 가능하다고 본다. 재벌그룹의 유용성과 정당성을 옹호한 이런 태도가 재벌개혁을 위한 소액주주운동을 펴온 재벌 개혁론자들을 비판하면서 논쟁은 다소 감정적 수준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는 장하준을 "재벌체제 개혁에 딴죽을 거는 수구적 진보파"라고 비판했다.
한국 경제의 현재적 모순과 박정희식 경제 모델의 상관 관계도 논쟁거리다. 장하준 등은 "이른바 경제민주화론자들은 (<박정희의 맨얼굴>에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빈부격차 심화와 양극화라는 심각한 문제의 주원인이 박정희 체제의 유산인 재벌과 관치, 토건주의에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올바른 인식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한국 경제가 처한 문제는 30년 전의 박정희 탓이 아닌 신자유주의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다.
이에 이정우 경북대 교수는 <한겨레21>에 "시장만능주의의 폐해도 크지만 박정희 체제의 유산이 한국 경제와 사회에 끼친 악영향이 얼마나 큰데, 이에 눈감는 태무심은 정말 놀랍다"고 썼다. 장하준 등은 한국 경제의 현재적 모순의 근원을 신자유주의에 둔 반면에 이정우 교수 등은 박정희식 개발독재의 잔재에 커다란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논쟁이 격화되자 최병천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이 중재자로 나섰다. 그는 "주주자본주의 타파론자인 장하준 등은 '계열사-그룹 체제'의 계승에 강조점을 두고 있고, 반면 재벌개혁론을 강조하는 김상조-이병천 등은 '총수 지배 체제'의 극복을 강조하고 있다"며 "양자 모두 복지국가의 확대에 동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란 양쪽의 지향점이 같은 만큼 논쟁이 생산적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중에도 논쟁은 쉽사리 접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격화되고 있다. 장하준 등은 28일 '이건희와 삼성그룹도 구별 못하나'란 글에서 "책에서 재벌들이 '불법을 저지르는 것 말고는 문제가 없는 것처럼 (우리가) 재벌 합리화론을 펼치고 있다고 비난하는 것은 명백한 왜곡이요 중상 비방"이라며 "인물(재벌가)과 제도(대기업집단)를 구별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자들을 겨냥했다. 앞으로 8~10차례 <프레시안> 기고를 통해 논쟁을 이어가겠다는 뜻도 아울러 밝혔다. 아직까지 논쟁은 인터넷과 주간지 등 제한적인 공간에 머물러 있지만, 문제의 책이 경제민주화와 복지, 박정희식 경제 모델의 성과와 한계 등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대선을 앞두고 사회적 논쟁으로 점차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출처: http://media.daum.net/economic/others/view.html?cateid=1041&newsid=20120529200015910&p=h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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