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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도발적인 선거 실험이 아주 조용히 시작됐다. 2014년 지방선거. 야권의 몇몇 선거 캠프는 기존 선거 문법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캠페인을 풀어나갔다. 목표는 하나였다. 집토끼의 이탈 없이, 중도 표를 잡아라.

야권에는 누구나 동의하는 논리가 있다. 한국 정치는 보수에 유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진보 표를 최대한 결집시키는 것만으로는 늘 아슬아슬하게 지는 선거가 된다. 그렇다면 중도 표를 잡아와야 한다. 여기까지는 쉽다. 그 다음이 문제다. 중도 표는 대체 어떻게 잡는 걸까? 우클릭해서 중도층의 구미에 맞는 정책을 내놓을까? 그러다가 고정 지지층이 이탈하면?

야권에서 주로 볼 수 있던 중도층 공략의 기존 문법은 이랬다. 중도층이 민감하게 반응할 만한 이슈를 골라 전선을 선명하게 친다. 2010년 지방선거의 무상급식 이슈가 대표적이다. 이렇게 선명한 대립각을 세우면 중도 표는 양자택일을 하게 된다. 따라서 이 전략에서는 ‘어떤 전선을 치느냐’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중도가 진보에 가담하기 쉬운 이슈를 뽑아내는 것이 관건이다.

이렇게 뚜렷한 각을 세우는 중도층 공략을 ‘결집형’이라고 부르자. 결집형은 2002년 대선, 2010년 지방선거, 2012년 총선과 대선 내내 야권의 기본 전략이자 교과서 대접을 받았다.


 

   
 

이 결집형 전략이 과연 만병통치약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단적인’ 전략가들이 야권에 하나둘 생겨나더니, 올해 지방선거에서 한 흐름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결집형 전략을 이렇게 평가한다. “진보가 결집하면 보수도 결집한다. 그러면 싸움이 격해질 수밖에 없다. 이때 중도는 양자택일을 하는 게 아니라 환멸을 느끼고 이탈해버린다. 중도는 특정 세력에 애착이 형성되어 있지 않고, 정치인의 태도를 민감하게 보기 때문이다.”

이들은 중도 표를 끌어들일 것이 아니라 먼저 잡으러 가자고 제안한다. 흔한 우클릭론으로 들리지만 좀 다르다. 핵심은 이렇다. 선명한 전선은 치지 않는다. 상대 후보와 싸우지 않고, 낮은 자세로, 온건한 태도를 유지한다. 말하기보다 듣기에 방점을 찍고, 선두에 서기보다 공감능력을 내보인다. 찬반이 격렬히 갈리는 초대형 정책공약도 자제한다. 공약, 구도, 메시지, 특히 중요한 점으로 후보의 태도에 이르기까지 ‘저공비행’으로 중도를 먼저 노린다.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이슈 주도력이 떨어지고 지지층의 열정을 식혀버린다. 이러면 상대보다도 진영 내부의 비판에 특히 취약해진다. “선거 참 못한다”라는 말을 듣기 쉬운 접근법이다. 이렇게 위험부담을 지면서까지 전선을 일부러 뭉개는 접근법을 ‘침투형’이라고 부르자.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 광역단체 후보 중 적어도 4명은 확실히 침투형 캠페인을 펼쳤다. 저공비행을 하고, 전선을 뭉개고, 중도에 기조를 맞췄다. 서울의 박원순, 강원의 최문순, 충남의 안희정, 대구의 김부겸이 그랬다.

박원순 캠프가 네거티브에 무대응했던 이유


서울의 박원순 후보는 침투형 전략을 입안한 전략가보다도 한발 더 나아갔다. 선거 전략과 일정의 기본이 되는 유세차를 전부 없애버리고 걸어 다니며 유권자를 만났다(<시사IN> 제349호 “‘선거 실험’에 서울을 걸다” 참조). 네거티브 캠페인도 하지 않겠다고 애초에 선언하며 스스로 손발을 묶어버렸다. 침투형 전략을 처음 입안한 박원순 캠프의 기획자는 “네거티브를 원천 봉쇄할 생각은 없었는데 후보가 한 술 더 뜨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6월3일 서울 종각 앞 광장에서 인사를 하는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박원순 후보는 유세차를 없애고 배낭을 메고 걸어 다니며 유권자를 만나는 선거운동을 벌였다.  

 

ⓒ연합뉴스

 

6월3일 서울 종각 앞 광장에서 인사를 하는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박원순 후보는 유세차를 없애고 배낭을 메고 걸어 다니며 유권자를 만나는 선거운동을 벌였다.


박원순 캠프는 막판 정몽준 후보의 무차별 네거티브 공세에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전선을 뭉갠다는 침투형 기조가 캠프 전체에 공유되었기에 가능했다. “공보 실무자 중 한 명은 우리 기조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며 캠프를 떠나 중앙당으로 복귀하더니, 즉시 정몽준 후보를 공격하는 논평을 냈다. 엄청나게 답답했던 모양이다. 캠프에서 돌발행동을 하지 않아 다행이었다(웃음).” 기조 입안자의 회고다. 

충남의 안희정 후보도 유세차와 마이크를 극도로 자제했다. 길을 걷다 만난 유권자와의 대화에 몰입하다 일정이 꼬이기 일쑤였다. 6월1일 충남 아산시. 복기왕 아산시장 후보가 안 후보를 수행하며 “도지사 오셨습니다!”를 외치자, 안 후보가 등을 툭 치며 ‘그런 것 좀 하지 마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복기왕 후보는 멋쩍게 소개를 그만뒀다. “요란 떨지 말자”는 안희정 캠페인을 관통하는 정서였다.

안 후보는 상대인 정진석 후보와도 각을 세우지 않았다. 대권 도전 의사를 내비치며 ‘큰인물론’으로 판을 끌고 갔다. 전선을 치는 대신 미래로 초점을 옮겨버리며 충청권의 큰 인물 갈망을 자극했다. 전선 뭉개기의 충청식 변형이다. 당선 직후 안희정 캠프는 승리 요인으로 셋을 꼽았다. 인물론과 대망론, 포지티브 캠페인, 조용한 선거. 하나같이 침투형 전략이다.

강원도의 최문순 후보는 도내에서 별명이 ‘네네 지사’로 통했다. 누가 말을 걸든 ‘네 네’ 하며 듣는 모습이 소문이 났다. 그는 SNS를 통해 감자 등 강원도 특산물을 팔아 지역에서 소문을 타기도 했다. 침투형의 강원도 버전이다. 6월1일 강릉 단오제 때 최문순 후보는 축제 한쪽에 펼친 자유총연맹 강릉지부 천막에 들어가 한 시간이 넘도록 막걸리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다만 선거 막판에는 논문표절 공방 등이 벌어지며 결집형이 일부 가미됐다.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는 고정표가 없다시피 한 대구 버전의 침투형 캠페인을 구사했다. 중도를 넘어 보수 성향의 유권자에까지 침투를 시도했다. 박정희 컨벤션센터나 박근혜 사진을 이용한 선거운동 등을 밀어붙였다. 캠프 내부의 얘기를 들어보면 핵심은 ‘박근혜 마케팅’이 아니라 ‘전선 뭉개기’였다. “표에 도움이 안 될 정도로 너무 나갔다”라는 논란이 캠프 안에서 일기도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아래 그림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새정연이 받은 표를 여러 잣대로 분석한 것이다. ‘본인 득표율’에서 ‘광역비례 득표율’을 빼면, 정당 지지층 외에 후보 개인 능력으로 벌어들인 표를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그 결과가 그림의 ‘후보효과 지수’다. 그림에는 새정연에서 후보효과 지수가 가장 높은 5명을 실었다(호남은 제외했다).

   
 


침투형 후보 4명이 모두 순위에 들었다. 안희정·최문순 지사는 새누리당이 크게 우세한 지역에서 결과를 뒤집었다. 박원순 시장은 광역의원 투표까지 견인해낸 징후가 있다. 서울에서 새정연 정당 득표율은 45.4%였지만, 광역의원 선거구에서는 출마자 중 75%가 살아 돌아왔다.

이런 결과를 ‘인물 경쟁력’으로 결론 내는 기존 분석은 타당하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침투형 캠페인은 인물 적합성에 더해, 전선 뭉개기, 네거티브 회피, 중도의 환멸을 막는 겸손하고 온화한 태도 등으로 이어지는 일관된 전략 기조다. 이 틀에서는 인물 자체도 결정적 변수라기보다는 침투형 전략 패키지의 한 요소가 된다. 네 곳의 캠페인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큰 틀에서 침투형 기조 아래 전략을 배치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정한 흐름으로 묶어보기에 충분했다.

여러모로 ‘이단’이다. 정치판의 정론인 결집형 전략에 반기를 들면서도 우클릭으로 회귀하지 않는다. 기존 지지층과 중도층을 모두 잡는다는 목표를 세우고, 중도를 먼저 잡는다는 우선순위를 확정한 후, 기존 지지층을 한데 묶어낸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다는 걸까. 이들이 주장하는 핵심 변수는 후보다. 박원순 캠프의 전략 입안자는 “후보가 걸어온 삶과 정치의 궤적이 고정 지지층에 불안감을 주면 안 된다. 그래야만 마음껏 중도를 잡으러 갈 수가 있다”라고 말했다. 역설적이게도, 정체성이 확고한 후보가 훨씬 자유롭게 침투형 캠페인을 벌일 수 있다는 얘기다.

핵심 변수는 지지층에 불안감 안 주는 ‘후보’


여론 분석 전문가인 정한울 박사(정치학·동아시아연구원 사무국장)는 이번 선거에서 야권의 대세로 떠오른 침투형 캠페인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몇 년 전부터 그는 한국의 중도층에 중대한 성격 변화가 일어났다고 느끼고 연구해온 터였다. 

그는 결집형이 가정하는 중도층과 침투형이 가정하는 중도층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했다. “중도에 대한 학계의 기존 주류 이론은, 자신의 선호나 이해관계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비합리적 유권자가 태도를 정하지 못해서 중도로 남는다는 것이다. 이럴 때에는 이들을 견인해와야 하니 결집형이 먹힌다. 그런데 요즘 들어 중도층을 설명하는 새로운 개념이 ‘상충성’이다.”

   
 

 

 

 

 

 

 

 

 

 

 

 

 

 

 

 

 

 

 

 

 

 

 

무슨 뜻일까. “한 개인에게도 진보적 가치와 보수적 가치가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다. 예전에는 이를 무지해서 생긴 일로 보았지만, 요즘 인지과학에서는 이런 상충성이 꽤 보편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많다.” 그는 종이 위에 축 두 개를 그렸다(왼쪽 그림). 가로축은 선별 복지-보편 복지 축, 세로축은 복지 확대-복지 축소 축이다. 그러고는 설명을 이어갔다.

“복지로 예를 들어보자. 진보의 전통적인 태도는 복지는 확대되어야 하고 보편 복지가 좋다는 거다. 그러니까 여기(왼쪽 위)다. 반면 보수의 태도는 복지를 줄이고 선별 복지를 하자는 오른쪽 아래다. 각각 진보와 보수의 고정표 자리다. 그런데 꽤 많은 사람들은, 복지는 늘어나야 하지만 가난한 사람을 골라 돕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게 여기(오른쪽 위)다. 자, 이 생각이 비합리적인가? 아니다. 진보와 보수의 주장에서 하나씩, 충분한 정보를 갖고 취사선택을 한 것이다. 이런 새로운 중도층은 전통적 진보·보수 전선이 그어진다고 한쪽에 끌려가지 않는다. 오히려 둘 다 자신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보고 퇴장해버린다.”

정한울 박사가 보기에, 중도층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중도가 단선적인 좌우 척도에서 가운데 있는, 그래서 좌우의 진보와 보수가 줄다리기를 해서 당겨오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고학력, 정보 접근성, 진보·보수 정권을 두루 겪은 경험 등으로 무장한 ‘새로운 중도’는 다르다. 이들은 스스로 좌표축을 하나 더 그려서(‘상충성’), 진보와 보수의 사이가 아니라 중도 고유의 자리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되면 게임의 룰은 줄다리기에서 땅따먹기로, 결집에서 침투로 급변한다. 그는 그래프의 신(新)중도층 자리(복지 확대와 선별 복지의 조합)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2012년 대선에서 누가 결국 여기를 차지했나? 박근혜 후보다.”

18쪽 그림은 아주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로축을 경제, 세로축을 안보로 생각해보자. 이때 신중도층이 몰릴 자리는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를 조합한 장소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2011년 대폭발했던 ‘안철수 현상’의 핵심이었다. 다만 안철수 현상은 2012년 대선 국면에서 진보 고정층의 의심을 걷어낼 정체성이나 정치력을 보여주는 데 실패하며 세가 쪼그라들었다. 보수 고정표의 의심을 살 리가 없는 박근혜 후보와의 차이였다. 인물 변수가 또 한 번 핵심이 된다.

  안희정 충남지사 후보(왼쪽), 최문순 강원지사 후보(가운데),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오른쪽)는 상대와 각을 세우기보다는 몸을 낮추고 중도에 기조를 맞추는 선거운동 캠페인을 벌였다.  

 

안희정 충남지사 후보(왼쪽), 최문순 강원지사 후보(가운데),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오른쪽)는 상대와 각을 세우기보다는 몸을 낮추고

중도에 기조를 맞추는 선거운동 캠페인을 벌였다.

 

선거는 반복 실험이 불가능하다.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같은 결과를 두고도 수많은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침투형이라는 선거판의 ‘새로운 이단’들은 이번 선거의 성공이 어떤 보편성을 보여준다고 믿는다.

하지만 ‘정통파’의 눈에 이번 선거는 침투형 기조의 승리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낮은 정당 지지율과 상대적으로 높은 후보 지지율, 세월호 정국이라는 특수성, ‘국민 미개 발언’ 등의 돌발 호재가 기막히게 겹친 결과였다.

여러 우연이 모여 침투형이라는 ‘안 되는 전략’을 떠받쳐줬다고 보는 시각이 여전히 다수파다. 근본적으로 이는, 대체 중도란 무엇이고 중도 유권자란 누구인가를 두고 벌어지는 해석 투쟁이다. 논쟁은 오래 지속될 전망이다. 더 많은 데이터와 장기적인 사례 축적이 필요해 보인다.

하나는 분명하다. 그간 궁여지책이나 임시방편으로 치부되던 침투형이라는 ‘이단’들이,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눈에 띄는 한 흐름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선거 전략의 주류가 되었다고 말하기는 한참 이르지만, 적어도 시민권을 확보한 것만은 사실이다. 이번 선거는 비유하자면 인상적인 기조발제였다. 난상토론의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다.

출처: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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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wit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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