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족 및 피해사례 발표가 있었다.
게재하거나 펌한 네티즌들에 대해서는 직계존속 박정희 비방 허위사실유포 선거법위반, 명예훼손, 심지어 사자 명예훼손죄라는 잣대까지 들이대며 구속, 법정구속, 벌금폭탄, 무차별 기소가 이루어 지고 있다. 불구하고 불구속과 구속으로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법원의 형평성 없는 법적용에 대하여 유명무죄, 무명유죄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스크렙하여 포털사이트에 게제한 박모씨와 고모씨를 중앙선관위가 후보 비방 및 허위사실유포혐의로 고발하여 재판중이다.
남편을 협박하여 강제이혼을 시키고, 성노예로 취급하다가 35세 연상의 미국인에게 강제로 결혼을 시켜 미국으로 추방당한 사람이 천재무용가이자 영화배우인 김삼화(金三和)씨로 밝혀졌다.
무용을 시작하여 조선무용연구소 한성준(韓成俊)에게 사사했으며, 성신여중 재학 당시 15세의 나이로 미국 대통령 특사 환영연회에서 공연을 하는 등 “천재 소녀 무용가”로 불리며 일찍부터 재능을 인정받았다.
분해 엄앵란과 칼싸움 활극을 선보인 <대도전> 등 15편 안팎의 작품에 출연했다. <한강은 흐른다>로 1962년 연극 무대에 서기도 했다. 지적인 배경과 거침없는 언사로 “영화가의 독설가”로 불리기도 했다. 두려움으로 평생 노이로제로 인해 괴로워하다 세상을 떠났다고 알려졌다.
저항시인이자 독립투사였던 ‘모란이 피기까지‘ 서정시인으로 유명한 김영랑 시인의 3남인 칼럼리스트 김현철씨와 인터넷 영상으로 연결하여 사실관계를 확인하였다. 취재 상황 그리고 박정희의 김씨에 대한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증언을 하였다
김현철 씨의 국회 발표회 영상 증언
또 피해사례 발표 후 박정규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시절 국민들에게 성범죄자는 전자팔찌와 사형제로 강력히 처벌하겠다고 엄벌의지를 밝혔지만 먼저 국민들에게 박정희의 권력형 상습 성폭력에 대한 사실을 밝혀야 하며 잘못된 권력형 성범죄 행위에 대하여는 국가가 유가족들에게 사죄와 배상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현철 칼럼 리스트 톱스타로서 앞날이 촉망되던 미모의 영화배우(서울 명문대 출신)가 당시 결혼 1년 만에 첫아들까지 얻는 등 행복한 신혼생활로 동료 선후배 배우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 호사다마’라 했던가? 운명의 여신은 이 여인의 행복에 샘이 났던지 행복한 이 가정에 살살 바람을 불어 넣었다. 미인을 뽑아 왕에게 바치던 벼슬아치) 한 분이 집에 나타난 것이다. “각하께서 모셔오라는 명령이십니다. 잠간 청와대에 다녀오시게 화장하시고 15분 이내로 떠나실 준비를 하세요“하는 게 아니가! 많았던 시절이라 ‘내게도 올 것이 왔구나!’하는 체념과 함께 사랑하는 남편과 갓난 아들의 얼굴이 눈앞에 스쳤다. 그러면서 “이제 갓난애의 엄마로서 신혼 유부녀입니다. 홀로 있는 연예인들이 많은데 저는 좀 빼 줄 수 없을까요?”하고 애원했다. 이 여인은 현 남편과 만날 때 까지 연애 한 번 못 해 본 순진한 여성이었으니 각하의 부름은 상상도 못 했던 충격 바로 그것이었다. 허나 각하가 어떤 사람이라고 그런 말이 통했겠는가. 채홍사의 자세를 보고 더 반항했다가는 자신도 또 영화제작 스탭인 남편도 당장 영화계에서 매장될 것을 안 여인은 순순히 따라나설 밖에 없었다. 그 다음 날 새벽까지 각하의 ‘성노예‘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눈물이 글썽, 역시 울고 있는 부인의 설명을 듣고 부드럽게 위로해 줬다. “옆집에서 검은 차가 당신을 태우고 갔다기에 다른 연예인들처럼 우리에게도 차례가 온 것을 알았다”며 부인을 부둥켜안고 한 없이 울었다. 계속 채홍사가 찾아 왔다. “여보, 놀라지 마, 나 오늘 무시무시한 곳에 끌려갔다 왔어, 최단 시일 내에 당신과 헤어져야 두 사람 모두 심신이 편할 거라는 협박이야, 아무래도 우리 갈라서야 하나봐. 어쩌지? ”하며 울먹였다. 사는 길은 빠른 시일 내에 이혼하고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는 길 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결론 밖에는 다른 길이 안 보였다. 방안에서는 남편이 쓴 쪽지 한 장이 발견됐다. “여보, 나를 데리러 온 사람이 밖에 기다리고 있어, 따라가야 해. 날 찾지 마. 그게 당신도 사는 길이야. 우리 아이를 잘 길러 줘. 먼 훗날 다시 만나, 사랑해 여보. ” 이게 마지막이었다. 미국인을 소개할테니 당장 결혼해서 미국으로 가 살라고 명령했다. 속박에서 해방된다는 희망 섞인 기쁨도 자리했다. 마냥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 노인은 결혼 후 6년 만에 많은 재산과 두 아들을 남기고 저 세상으로 갔다. 행복했던 신혼시절을 회상하며 현재 미국 하늘 아래 전 남편의 아들, 미국인 남편의 두 아들 등 세 아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 후 전 남편과는 자신이 재혼한 탓도 있어서 완전히 소식이 두절 되었다고 한다. 인권유린보고문’을 발행했다는 소식이다. 있단다. 여성(김재규 변호인 이동일 변호사가 확인한 채홍사 한 명의 수첩에 기록된 것만 2백여 명임)에 관련된 내용은 왜 포함돼 있지 않느냐는 것, 이 점에서는 단연 박씨의 악행이 김정일의 추종을 불허했으니 말이다. 박근혜의 나이는 27세였다. 철이 난 후 아버지의 몹쓸 짓이 계속되었음을 말한다. 왜냐면 40 여년이 흐른 오늘날까지 그 여자들을 한 분이라도 찾아가 아버지 대신 사죄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사과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박정희에게 불려갔던 모든 여성들이 영광스러워 기뻐하는 중이라고 착각하고 있지나 않은지? 드물다. 천인이 공노할 일이기 때문이다. 될 수 있다는 것인지? 언제쯤이면 우리 국민의 의식 수준이 대통령 될 자와 되어서는 안 될 자를 가릴 수 있을 만큼 성장한다는 것인지 답답할 뿐이다. 출처: http://www.amn.kr/sub_read.html?uid=9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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