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모음/경제 일반 2012. 2. 23.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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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왕국’ 일본이 31년 만에 무역수지 적자를 냈다. 국가 부채가 그리스 보다 높은 상황에서 무역적자로 국내 자금 사정마저 악화된다면 시스템 붕괴도 우려할 수 있다.

‘수출 왕국’ 일본이 무역수지 적자를 냈다. 일본 재무부 발표(1월25일)에 따르면, 이 나라의 2011년 무역수지는 2조4900억 엔(320억 달러, 약 36조원) 적자다. 1980년 오일 쇼크로 적자를 낸 뒤 31년 만이다. 사실 한 나라의 무역수지가 흑자와 적자를 넘나드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수년간 연속으로 무역수지 적자를 내도 나라가 망하지는 않는다. 미국은 지난 20여 년 동안 계속 무역적자를 내왔지만 지금도 패권국가 노릇을 한다.

그러나 이번의 일본 무역수지 적자는 경우가 다른 것 같다. 상당수 해외 전문가나 유력 언론들이 일제히 일본 경제에 대한 총체적 경고를 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일본 증권시장에 “사요나라(안녕)”를 고하기까지 한다.


   
ⓒ연합뉴스
해외 투자자들이 일본을 떠나라는 경고를 하기 시작했다. 1월19일 도쿄 시민들이 주식 시황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일본이 그리스 된다면


이는 무역적자가 일본 경제 시스템 전반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세계 2~3위 채권국인 일본도 그리스나 아일랜드처럼 국가 부도 위기를 당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국가 부도란 정부가 부채를 제대로 갚지 못하는 상황이다. 국가는 세금을 걷어 공무원 고용, 인프라 건설, 복지 등에 사용한다. 그러나 거둬들인 세입만으로 불충분할 때가 있다. 이 경우에는 일정한 금리로 국채를 발행해서 판매해 돈을 빌린다. 상황에 따라서는, 국채를 국내에서 모두 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국내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을 때는 해외 투자자에게 채권을 팔 수밖에 없다. 이러다 불경기가 닥치면 정부 수입이 줄어들어 빌린 원금과 이자를 갚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이에 따라 돈을 갚기 위해 다시 돈을 빌리는(국채를 발행하는) 악순환이 발생하면서 부채 규모가 커지고 국가 신용도는 떨어진다. 당연히 국채금리(정부가 빌린 돈에 대한 이자)는 올라간다. 이런 상태가 어느 정도까지 진행되면, 국채금리를 더 높여도 돈을 빌릴 수 없어서(국채가 팔리지 않아) 이자도 갚지 못하는 국가 디폴트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리스와 아일랜드 등이 겪은 상황이다. 2011년 말 현재 그리스 정부 부채는 GDP의 160%, 아일랜드는 100% 정도다.

현재 일본의 국가 부채는 GDP의 230%에 달한다. 그리스나 아일랜드보다 훨씬 높다. 그러나 최근까지 일본의 국가 부도 위기를 진지하게 걱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경상수지는 ‘무역수지’와 ‘소득수지’ 등을 합한 수치다. 세계 최대 수출국이자 제조업 왕국인 일본은 특히 가전과 반도체, 자동차 등 제조업 부문에서 국제 시장을 지배해왔기 때문에 무역수지 흑자(국제무역에서 수입보다 수출이 많은 경우) 규모가 엄청나게 컸다. 일본의 무역흑자는 1990년대 초 10조 엔까지 기록한 바 있으며 2000년대 들어서도 매년 5조 엔 내외에 이르렀다. 이와 별도로 일본이 외국에 설립한 기업, 해외 대출 등으로부터 들어오는 이윤·배당금·이자 등의 규모도 매년 10조 엔 이상이었다(소득수지). 2011년 일본의 경상수지가 흑자인 이유도 무역수지 적자(2조4900억 엔)보다 소득수지 흑자(14조 엔 정도)가 훨씬 컸기 때문이다. 


   
ⓒReuter=Newsis
1월24일 경제 대책을 발표하는 아즈미 준 일본 재무장관.


이처럼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크다는 것은 외국에서 받았거나 받을 돈이 많아 국내에 여유 자금이 풍부하다는 의미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그리스와 달리 해외 투자자에게 손 벌릴 필요가 없었다. 일본인에게만 국채를 팔아도 예산과 ‘부채 돌려막기’에 필요한 자금을 충분히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외국인 투자자들이 세계 최대의 정부 부채 비율을 보이는 일본의 국가 부도를 우려하지 않았던 이유는, 일본 정부가 천문학적인 경상수지 흑자에서 필요한 재정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 정부가 발행한 국채 중 95%가 일본인의 손안에 있다(사실상 일본인에게만 돈을 빌렸다). 애국심 충만한 일본인들은 정부에 비싼 금리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국채금리가 연 1.5% 정도로 물가상승률보다 낮아도 묵묵히 돈을 빌려준다. 금융시장 상황이 불안하다고 국채를 마구 팔아서 시장금리를 폭등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덕분에 일본 정부는 굉장히 낮은 비용(이자)으로 돈을 빌려 나라 살림을 운영해왔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지난해 3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에도 일본의 금융상품들(주식·채권)을 대량 매집해 엔화를 사상 최고 수준인 달러당 77엔까지 올려놓았다. 경상수지 흑자와 이에 기반한 정부의 자금 조달 능력을 믿었던 것이다.

동일본 대지진 직후인 지난해 4월 사모펀드 ‘테마투자운용(Themes Investment Management)’ 설립자인 켄 쿠티스는 <타임> 인터뷰에서 “일본은 지진 복구비용을 국내에서 조달할 수 있기 때문에 국가 부도 위기는 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단서를 달았다. “그러나 일본이 해외에서 돈을 빌려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사태 추이를 예의 주시해야 한다.”


심판의 날이 오다

그렇다면 ‘일본이 해외에서 돈을 빌려야 하는 상황’은 무엇인가.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가 적자로 반전되어 국내 자금 여력이 고갈되는 경우다. 지금 일본의 정부 부채 규모는 1000조 엔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예산의 절반 정도를 빌려서(국채를 팔아서) 충당하고 있다. 세입(50조 엔) 중 25%(12조 엔 정도)는 부채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는 데 사용된다. 이런 조건에서 일본 정부가 해외에서 돈을 빌리게 되면 일단 지금보다 훨씬 많은 이자를 감수해야 한다. 해외 투자자들은 일본 국민과 달리 물가상승률, 일본 정부의 신용도, 다른 나라 국채 수익률 등을 따져 이에 걸맞은 금리 수준을 요구할 것이다. 현재 일본 정부의 국채금리를 1% 포인트 올릴 때마다 10조 엔의 이자비용이 추가로 필요하다. 연간 세입이 50조 엔 정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국채금리가 2~3% 오를 때 그 이자만으로도 일본은 파산할 수 있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해외에서 돈을 빌리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2011년 무역수지 적자로 실현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 해외 투자자들의 시각이다.


   
ⓒAP Photo
홍수로 물에 잠긴 타이의 혼다 공장. 일본의 산업구조가 와해되고 있다.


일부 해외 전문가들은 일본의 무역수지 적자 구조가 고착될 뿐 아니라 그 규모도 비대해지리라 내다본다. 이 경우, 소득수지 흑자가 충분히 크다면 무역수지 적자를 상쇄해 경상수지 적자를 피할 수 있겠지만 그 또한 세계적 불황 때문에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

프랑스 대형 금융기관인 소시에테제네랄 도쿄 지점의 애널리스트 다쿠치 오쿠보는 지난 1월 말 BBC 인터뷰에서 “일본의 무역적자는 2014년까지 계속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 투자 전문지 <머니모닝>의 수석 투자전략가 케이트 피츠제럴드는 “5년 이후 일본인들은 무역적자가 320억 달러에 불과했던 좋았던 옛날을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앞으로 일본의 무역적자는 1000억 달러가 될 수도 있고 2000억 달러가 될 수도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같이 비관적인 전망은 결국 일본의 산업구조가 와해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일본의 카메라·텔레비전·자동차·반도체가 세계시장을 지배하고, 미국이나 유럽의 어느 가정에 가도 소니·파나소닉·캐논·도요타 상표를 볼 수 있던 시대는 끝났다. 한국의 삼성·LG가 일본 기업들을 따라잡았고, 중국과 아세안 국가들의 도전도 거세다. 심지어 그동안 금융 등 서비스 산업에 특화하는 대신 제조업 상품을 수입해 소비하던 미국까지 제조업 복귀를 서두르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경쟁이 치열해지자 일본 제조업체들은 원가절감을 위해 생산라인을 중국과 서남아시아로 옮기기도 했다. 그 때문에 일본 내에는 ‘산업 공동화’와 이에 따른 실업률 상승, 수출 감소(일본 내의 생산이 줄어들기 때문) 같은 현상이 발생했고, 이는 점점 더 구조화되는 양상이다. 최근에는 카메라를 제조하는 세계 굴지의 기업 캐논이 생산라인 중 60%를 해외로 옮겼다.

거의 100%에 가까운 해외 에너지 의존도도 일본의 미래에 족쇄를 채우고 있다. 지난해 무역수지 적자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에너지 수입액 폭등이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일본의 원전 54기 중 4기만 가동하는 형편인데, 이에 따라 석유와 천연가스 수입이 대폭 증가했다.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액(4조7730억 엔)이 2010년 대비 37.5% 늘었다. 원유 수입액 역시 38.6% 증가했는데 이란 사태가 악화되면 추가 부담이 예상된다. 국제에너지청(International Energy Agency) 자료에 따르면, 일본은 수입 원유 중 88%를 중동에서 사온다.

일본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엔화 가치 급등으로 수출에 어려움을 겪었다(엔화 가치가 오르면 일본 수출품의 해외 가격이 상승한다). 이는 얄궂게도 남유럽 위기로 불안감을 느낀 해외 투자자들이 유로 지역에서 자금을 빼서 ‘안전자산’인 일본 금융상품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일본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 ‘일본 탈출’로 엔화 가치가 폭락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에너지 해외 의존·노령화·저출산…

장기적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노령화와 가장 낮은 출산율이 일본 경제를 암울하게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2060년에는 일본 인구가 현재보다 30%나 줄어든다. 일본의 2050년 추정 연령별 인구 분포를 보면, 경제활동인구 100명이 75명의 노인을 부양해야 한다. 같은 시기, 미국은 경제활동인구 100명당 부양 인구가 32명이다. 일본 경제의 활력은 지금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머니모닝>의 수석 투자전략가 케이트 피츠제럴드는 “큰 손해를 보고 싶지 않다면 일본에 ‘사요나라’를 고하라”고 말한다. 그런데 일본이 현재의 궁지로 몰린 원인(높은 에너지 해외의존도와 수출의존도, 통화가치의 불안정성, 급속한 노령화와 낮은 출산율) 중 상당수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특징이기도 하다. 5~10년쯤 뒤엔 “한국에 ‘안녕’을 고하라”는 투자 전문가들이 설치게 될지도 모른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출처: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2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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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wit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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