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한잔 하고 살짝 몽롱한 가운데 손가는데로 쓴다.
여기에 이런 글을 올린 적이 거의 없지만 오늘은 그냥 뭐라도 써야 할 거 같은 기분이 들어서 끄적여본다.
오늘 높은 분이 커리어 패스에 대해서 물으셨다. 대답을 못했다. 미래에 계획도 없는 것처럼 안 좋게 보시더라.
이해한다. 그 분에 입장과 나의 삶의 궤적이나 입장은 다르니 그럴 수 있다.
솔직히 수익률 올리기랑 영업 실적 올리는 것도 힘겨운 상황이다. 10년 박스피를 겪다가 이제야 조금 숨통 트인지 얼마 되지도 않다. 언제든지 예전으로 돌아갈 거 같은 불안한 감정은 항상 어른거린다. 그 와중에 살아남은 길은 미래에 대한 꿈이나 계획보다 당장의 생존, 이라고 쓰고 리스크 관리였다.
커리어 패스 예전에 많이 그려봤다. 그런데 그 중에서 마음대로 된 건 단 하나도 없었다. 내가 생각한대로 되었으면 나는 지금쯤 아마도 한국에 없었을 것이다.
모델 한혜진 님이 말씀하셨다. 마음대로 되는 건 몸만들기 밖에 없었다고. 나도 비슷한 이유 때문에 웨이트를 꾸준히 한다. 2년 정도 해오며 확실히 몸이 나아지는게 보이는 거 보니 정말 그런 거 같다. 앞으로도 웨이트는 꾸준히 하려고 한다.
그리고 나에게는 마음대로 되는게 하나 더 있다. 바로 손절.
학부를 마쳤다, 서브프라임이 터졌다. 인턴을 했다, 잘렸다. 대학원을 마치고 인턴을 했다, 유럽재정위기가 터졌다. 그래서 잘렸다. 간신히 자리잡은 이곳에서도 나의 자리는 없다. 나름 열심히 했지만 단 한 순간도 인정받아본 기억도 경험도 없다. 그런데 커리어 패스? 그런 거 세운다고 밀어줄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밀어주지도 않을 커리어 패스 따위나 신경쓸 바에는 손절 똑바로 하고 당장 눈 앞에 수익률이나 실적에 허덕거리는게 더 생산적일 것이다. 미래는 어차피 높은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밀어주는 사람들에 것이니까.
투자한지 올 해로 19년 동안 미국금융위기, 유럽재정위기, 코로나 사태 속에서 살아남아왔다. 금융위기 다시 와도 나는 안 죽을 자신 있다. 운용역 누구 누구 대단하다고 하고 직접 강연도 들어봤다. 훌륭하신 분들이다. 하지만 그들만큼 어쩌면 내가 더 잘하는게 하나 있다. 역시 손절. 포기하고 물러나는데 누구보다 익숙하고 기민하다. 지금까지 많은 것을 포기했고 많은 것에서 물러나왔다.
<2021년 7월 1일 종가 기준 개인 계좌 상황>
(참고:
2019년을 마치며 BwithU의 재미있는 대체투자 & 금융투자 :: 2019년을 마치며 (tistory.com)
2018년을 마치며 https://bwithu.tistory.com/559
2017년을 마치며 http://bwithu.tistory.com/552
2016년을 마치며 https://bwithu.tistory.com/546
2015년을 마치며 https://bwithu.tistory.com/529 )
공수래 공수거라고들 한다. 이걸 체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런 덕분에 결국 살아남았다. 그런 덕분에 얼마 안되는 이런 성과라도 내게 되었다. 내 생각도, 내 의지도 없다. 상황이 사람을 만들 뿐이고 나쁜 사람도 좋은 사람도 없다. 나쁜 상황과 좋은 상황이 있을 뿐이다. 거대한 금융 시장이라는 기계 안에 모든 사람은 일개 나사, 볼트에 불과하다.
나도 그렇다. 컨베이어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생산직 노동자 분들과 별로 다를게 없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까라면 까고 박으라면 박으면 그만이다. 조금 있어보이는 말로 시장에 순응하고 정부 정책에 맞서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 같다. 그래서 경제적 자유 이런 말 들으면 사실 공감이 안된다. 돈을 벌고 싶다면 또 몰라고 자유가 대체 어디에 있다고 사람들은 그런 말 하며 이 바닥에 들어오는 걸까?
본인이 뭘 바라든지 세상에 안되는 건 안되는 거고,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것은 꿈도 꾸어서는 안되고 꿈꾸는 것조차 죄악인 것도 있다. 꿈꾸어서도 안되는 걸 꿈꾸는 걸 탐욕이라고 한다. 월가 격언에 이런 말이 있었던 거 같다. '황소도 돈을 벌고 곰도 돈을 벌지만 겁먹은 양은 언제나 벌벌 떨기만 하고, 탐욕스러운 돼지는 결국 도살당한다' 고. 그들은 죗값을 치룬 것이다. 어떤 꿈은 꿈꾸는 것조차 그 자체로 죄인데 꿈을 꾼 죄. 꿈꾸는 것조차 죄인 것을 꿈꾸는 것. 그게 탐욕이다. 지금에 나에게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탐욕이다. 그리고 탐욕을 버려왔기에 여기까지라도 왔다고 생각한다.
손절 못하는 사람들은 탐욕이라고 불리는 꿈을 꾸고 자기의 생각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처음부터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 포기가 쉬워지는데, 꿈을 꾸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손절이 안되는 것이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으나 경험적으로 사회적 성취를 하거나 스펙이 좋은 사람들 혹은 무언가를 이루려는 사람들, 꿈을 꾸는 사람들이 그런 경우가 많았던 거 같다.
그런 마당에 커리어패스에 대한 생각이 왜 필요한지 의문이다. 어떤 길을 말하든 결론은 높은 사람이 낼 것이고 그에 반하는 나의 의지는 인정받지 못할 뿐이다. 팩트가 어떻든 나의 바램이 어떻든 그냥 너는 부적격자라고 하면 솔직히 무슨 할 말이 있고 뭘 할 수 있나? '저는 할 수 있습니다' 라고 신입사원 면접 때처럼 말할까? 그만하자. 그 소리 면접장에서 수십번은 더 했고 결국 무시당했다. 그만하자. 어쩌면 탐욕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살고 싶은 인생 사는 사람 어디있나? 다 살아야만 하는 인생 사는 것이다. 하고 싶은 투자하고 사는 사람 없다. 해야만 하는 투자하며 사는 것이다. 딜 볼 때도 그렇게 본다. 저걸 나와 고객들이 해야만 하는가 아닌가. 그래서 모든 건들이 잘 된건 아니지만 대부분에 건들은 잘 되어왔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투자를 하던지 그 결론은 시장이 내지 않는가? 중앙은행이 까라면 까는 거고 정부정책이 까라면 까는 거랑 다른게 없다.
이 와중에 그나마 마음대로 되는 건 손절 밖에 없다. 정말 포기하면 편하더라. 오지도 않을 꿈같은 미래 꿈꿀 시간에 당장 이 현실에 충실하며 당장 수익률과 실적 올리기에 허덕이며 사는 거. 그러다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현재로서는 그게 나의 커리어패스다.
냉정하게 말해서 꿈꾸며 살아온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 저 정도 성과 낸 사람도 거의 보지 못했다. 슬램덩크에서 그랬다. 포기하면 편하다고. 나는 오래 전에 포기(라고 쓰고 손절이라고 읽는다)를 해보니까 수익률이 훨씬 나아졌다. 결국 미래라는 것도 현실 하나 하나가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이고 현실에 충실하기보다 꿈을 꾸는 자들은 글쎄 아마 어디론가 도망치는 것이 아닐까? 도망친 자를 위한 낙원은 없다. 영원히 그리고 어디에도.
와인 마시고 손가는데로 쓴 글 여기서 마무리 지으려 한다. 오늘같은 날은 평소와 다르게 아무 소리나 맘가는데로 써보고 싶어진다. 그냥.....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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