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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국가의 탄생과 함께 태어나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통해서 이름을 알렸지.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은 나를 떠받치는 든든한 힘이야. 한국에선 박정희 정부의 주민등록법이 나의 기반을 마련해줬어. 주민번호만 알면 개인정보는 줄줄이 따라오니까.그래서 한국은 내가 활동하기 가장 편한 나라야. 명심해. 내가 커갈수록 너희들은 행복에서 멀어질 거야.

한 트위터 사용자가 2011년 초 청와대 당국자가 올린 글에 욕설과 막말 멘션(댓글)을 달았다. 화제가 됐던 것은 이 당국자의 대응이었다. "당신이 누군지 알고 있어요. 나 말고도 여러 명이 알게 됐어요. 세상이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만만하진 않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던 것이다. 욕설을 했던 이는 "표현이 지나쳤음을 인정한다"면서도 "나는 그들에게 노출된 것이다. 그들의 시선이 감지된다. 과연 청와대는 모든 국민의 신상을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인가"라며 불안감을 드러냈다. 청와대는 트위터에 노출된 개인 정보를 보고 한 말이라고 해명했다.

악성 댓글에 대한 당국자의 감정적 대응이 빚은 촌극으로 넘어갔지만, 한편으론 정부가 원하면 누구든 감시하고 신상을 털 수 있다는 불안감 속에 살아가는 시대의 단면을 보여준 사례였다. 조지 오웰의 소설로 알려진 감시자 '빅브러더'는 2013년 현재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가. 과연 우리 삶에 얼마나 개입하고 있는가. 감시 사회를 비판해온 학자와 정보 업계 관계자, 시민단체 활동가 등 전문가들의 얘기를 종합해서 빅브러더와의 대화를 가상으로 꾸며봤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권석철 큐브피아 대표, 최철웅 계간 '문화/과학' 편집위원,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최희원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수석연구위원,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박창호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 등 7명의 전문가들이 도움을 줬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 빅브러더, 당신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지만 솔직히 잘 알지는 못한다. 언제 어떻게 태어났나. 그리고 어떤 존재인가.

"글쎄, 딱 꼬집어 말하긴 곤란하지만 국가의 탄생과 함께 태어났다고 볼 수 있겠지. 국가는 군인을 모으고 세금을 걷기 위해 국민들에 대한 광범위한 자료를 수집할 필요가 있었어. 나의 이름은 1949년에 조지 오웰이란 작가가 소설 < 1984 > 를 통해 알렸지. 그 땐 정말 깜짝 놀랐어. 내가 지금처럼 왕성하게 활동할 때가 아니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미래를 내다봤는지. 하지만 소설처럼 나를 특정 존재로 설명할 수는 없어. 나는 여럿이다가 하나로 합쳐지기도 하고 희미해졌다가 선명해지기도 하지. 무정형의 생물 같다고 할까. 그렇다고 괴물처럼 생각하지는 말아줘. 어떻게 보면 나는 너희들 안에 있어.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권력을 쥐려는 본능적 욕구. 그게 바로 나이기도 해.

정보통신 기술은 나를 떠받치는 가장 든든한 힘이야. 컴퓨터로 정보가 연결되고 축적됐으니까. 또 인터넷 발달은 개인들이 일상을 자발적으로 혹은 자동적으로 기록하게 했거든. 자발적 피감시자가 늘어난 셈이지. 특히 기록이 대량으로 축적된 빅데이터를 통해 많은 것을 얻게 됐지. 한국에서는 1962년 박정희 정부가 선포한 주민등록법이 내게 탄탄한 기반을 마련해줬어. 국민 개개인에게 번호를 부여하고 그 번호를 열쇠로 많은 정보를 담아놓는 국가는 그리 많지 않거든. 이후에 전자정보 체제를 도입하면서 모든 국가정보들을 이리저리 연결하더군. 나는 확실한 지위를 차지하게 됐지."

'민간인 불법 사찰'도 정보 권력 확보 위한 것

- 오래 전부터 우리 곁에서 스멀스멀 자리를 넓혀왔군. 그러면 2013년 현재, 당신의 위치는 어디인가. 정말 세상을 지배한다고 생각하나.

"정보는 곧 힘이고,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은 없단 말이야. 간단하게 생각해봐. 누구든 사용하는 컴퓨터에 칩 하나만 심으면 다른 컴퓨터 화면을 통해 뭘 하는지 속속들이 볼 수 있는 세상이야. 만약 칩만 심을 수 있다면 대통령도 감시할 수 있다구. 폭로된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감시 활동을 보면 인터넷과 기업, 국가가 협력해 시민의 모든 정보를 보는 경지에까지 도달하지 않았느냐 말이야.

한국의 지난 정부에서 민간인 불법 사찰과 같은 퇴행적 행태를 보인 것도 이런 정보 권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어. 모든 국민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그 결과를 분석한다면 엄청난 위력을 갖게 되지. 특히 최근처럼 빅데이터를 이용해서 국민들의 의식이나 행태까지도 예측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조작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정부의 권력은 나, 빅브러더를 통해 나온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을 거야.

국가뿐 아니지. 과거 국가가 독점적으로 관장하던 주민들에 관한 정보를 지금은 자본, 즉 기업들이 이윤 추구와 상행위를 위해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있어. 기업들은 자체적으로 개인 정보를 수집하고 국가가 수집한 자료들을 활용하기도 해. 나의 기능은 국가와 자본의 동맹체 내에서 통치는 물론 노동과 소비 등 삶의 전반적인 영역에 침투하고 있지. 하하하. 기분이 좋아지려고 하는군. 이 정도면 내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은데."

행위는 물론 의식까지도 통제·세뇌 가능

- 웃음소리가 기분 나쁘지만 그만한 능력자라는 점을 인정하겠다. 그런데 왜 우리를 감시하나. 또 갈수록 더 감시를 촘촘히 하는 이유는.

"거듭 말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권력이고 지배야. 피감시자가 어떻게 생활하며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취향을 갖는지를 알면 단기적으로는 행위를 예측할 수 있고 정책 조작이 가능해져. 장기적으로 보면 행위는 물론 의식까지도 통제하거나 심지어 세뇌시킬 수도 있다구. 감시당하는 자는 감시당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축되고 감시자의 권력이 크면 클수록 그 위축의 정도는 심해지지. 이렇게 위축된 피감시자의 상태를 이용해서 나는 원하는 것을 강요할 수 있지.

기업가는 노동을 강제하기 위해 감시를 동원하고 소비자를 감시해서 그에 맞는 타깃 마케팅을 펼치지. 국민 감시, 노동자 감시, 소비자 감시는 모두 감시자의 권력이나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것이야. 국정원은 인터넷 여론을 지배하기 위해, 기업은 시장을 지배하기 위해, 학교는 학생을 지배하기 위해, 개인은 다른 이들을 윤리적으로 처벌하거나 보복하기 위해 신상을 털지.

감시가 더 촘촘해지는 것은 기술의 발달은 물론이고 '안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과거 국가 감시가 주민 통치와 첩보 수집을 주요 임무로 삼았다면 지금은 치안을 목적으로 한 감시가 전면에 등장했지. 신자유주의와도 관계가 깊어. 조금 어렵게 들리더라도 들어봐.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언제 잘릴지 모르는 노동 불안과 사회적 안전망 해체 과정에서 국가는 치안 강화를 통해 정당성을 확보하려 한다는 말이야. 연쇄살인범이나 사이코패스 범죄는 사회적 위험과 무질서의 원인으로 쉽게 지목되고 범죄와 테러에 대한 공포를 자극해서 정부의 존재가치를 높여주지. 결국 강화돼야 할 것은 감시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거야.

한편으론 개인정보가 디지털화됐기 때문에 수집, 저장, 검색, 재가공이 매우 쉬워졌어. 정부나 기업, 학교뿐 아니라 주유소나 미용실마저도 대규모의 개인정보를 갖게 됐지. 소비자들은 국가기관의 감시처럼 위험하게 여기지도 않잖아. 혜택을 위해 자발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단 말이야. 각종 인터넷 홈페이지 가입을 위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개인정보들을 제공하고 있는지 생각해봐. 정보가 넘쳐나는데, 감시가 촘촘해질 수밖에 없지 않겠어."

군중 속에서 웃고 있는 얼굴만으로 정보 추적

- 어떻게 감시하나?

"기본적으로는 수집이지. 국가는 법령에 따르거나 아니면 당사자 동의를 받아 개인정보들을 수집해서 저장하고 있어. 거의 대부분 국가기관이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고 있지. 주민번호만 알면 개인정보는 고구마 줄기 캐듯 올라오니까. 카메라는 감시의 대표선수지. 과속 감시, 길거리 감시, 블랙박스 등 카메라는 차고 넘친다구. 인터넷에서 오가는 정보를 가로채는 패킷 감청도 빼놓을 수 없는 감시 수단이지

기업들은 경품 같은 미끼 수법을 많이 쓰지. 포인트를 얻기 위해서나 보다 편리한 구매를 위해서도 회원 가입을 해야해. 대부분 실명을 통한 신분 확인 과정을 거쳐야 하고 휴대폰 번호를 입력하기도 해. 한국은 세계적으로 유례 없을 정도로 휴대폰 실명제가 잘 돼 있거든. 본인 확인 없이는 휴대폰을 구매하지 못 하니까.

미국은 그야말로 감시의 첨단을 달리고 있지.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10억달러를 들여 준비 중인 차세대 신원 파악(NGI) 프로그램이 시행되면 얼굴과 음성 인식으로 개인정보를 파악할 수 있게 돼. 군중 속에서 웃고 있는 얼굴만으로도 정보를 추적할 수 있지.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감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소형 무인항공기를 이용해 민간인을 감시해 왔다는 얘기도 있어. 이 정도까지 하지. 더 자세한 것은 말할 수 없어."

- 한국은 당신이 활동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나.

"후훗, 그 질문에는 할 말이 많지. 한국은 내가 활동하기에 가장 편안한 나라 중 하나야. 주민등록번호만 알면 학교 생활기록부, 건강보험 정보, 은행 거래 내역, 심지어는 인터넷 게시판에 쓴 글까지 알아낼 수 있어. 지문 날인을 통해 주민번호와 신체 사이에도 확실한 연관성을 갖췄어. 내 입장에서 보면 이름을 바꾸든 얼굴을 성형하든 언제든 특정 개인을 추출해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편리함이야. 이런 국가는 흔치 않아. 고마울 따름이지.

한국이 이처럼 완벽한 국가신분등록 시스템을 구축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과거 군사독재 정권의 덕분이라고 봐야겠지. 물론 다른 정권들도 전자정부 구축으로 도와준 건 사실이고. 집회 장소 주변의 휴대전화 기지국을 털면 집회 참가자들의 신상을 한 번엔 알아낼 수 있는 곳이 한국이야. 게다가 세계 최고의 IT 선진국이면서도 보안에 대한 투자는 미흡해.

무엇보다 한국이 좋은 건 사람들의 생각이야. 자유주의 시민혁명의 경험 없이 고도 성장하는 과정에서 기술의 혜택에 길들여져 있거든. 자유주의의 기반이 약하고 감시를 거부해야 할 주체인 시민의 인식이 약한 편이야. 서구 국가에서 의무적으로 지장을 찍으라고 하면 폭동이 일어날지도 몰라. 하지만 한국에서는 나이가 차면 '자랑스럽게' 찍고 오지. 옛 인연을 찾아주는 TV 프로그램에선 타인의 생활기록부를 보여주면서(사전 동의를 받았겠지만) 즐거워하지. 한국에서는 누굴 만나도 일단 나이, 고향, 학교 등 개인정보를 알아야 대화가 가능하잖아. 뭐랄까, 한국은 개인적인 자아보다 공동체 내의 자아에 익숙하기 때문에 개인을 분리해서 정보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덜 하고 살아. 이래저래 한국은 빅브러더를 위한 나라야. 하하하."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 각국의 빅브러더들은 어떤 관계인가. 그리고 당신들의 세계에서 미국의 위상은 어느 정도인지.

"각국의 빅브러더들끼리는 정보 교환을 하지. 국제 통신감청 협력 체제인 '에셜론(ECHELON)'은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가 참여했어. 국제 위성통신이나 다른 나라의 지상통신을 첩보위성으로 파악해 지구상에서 오가는 거의 모든 통신을 감청할 수 있는 시스템이야. 9·11 테러 이후 반테러 명목으로 탑승객 정보나 범죄기록 공유를 많이 해 왔어.

미국의 NSA 감시 프로그램들도 우방국 정보기관들과 정보 교환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정보기관의 활동은 외국인 감시를 명목으로 한다는 법적 한계를 갖고 있지. 하지만 예를 들어 두 국가가 서로 정보를 교환하면 자기 국민들 정보까지 알 수 있는 셈이 되잖아. 한국인의 정보를 해외에서 빼내가는 일도 있다고 봐야지. 이집트에 폭동이 일어나서 경찰청의 감시 프로젝트가 공개됐는데 이걸 독일의 감시회사가 수행한 것으로 밝혀졌지. 20~30개 국가가 감시 사업을 수출하고 있어. 감시도 사고 파는 시대라는 걸 잊지마.

냉전 시대에 구축됐던 첩보망을 활용한 미국의 감시 능력은 상상을 초월해. 프리즘 계획이 폭로돼 충격을 줬지만 그 중 일부일 뿐이야. 미국 NSA는 거의 모든 세계인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 그뿐 아니라 미국에는 액시엄(Acxiom) 같은 회사도 있어. 일종의 개인정보 수집 판매 회사인데 수집 대상은 세계적으로 무려 7억명에 이른다구. 세계 인구 중 10%가량의 정보를 쥐고 있는 셈이지. 이들이 정보기관과 협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겠어? 그만큼 미국은 전지구적인 글로벌 빅브러더로서 힘을 갖고 있지."

한국 국정원은 무소불위의 정보 수집자

- 한국에서 빅브러더의 리더는 국정원인가?

"글쎄, 어려운 질문인데. 요즘은 세상이 하도 복잡해져서 딱 부러지게 말하기 힘들어. 하지만 국정원이 한국에서 무소불위의 정보 수집자라는 건 확실하지. 모든 보안기술에 대한 인가와 감독권을 갖고 있거든.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건에서 의혹이 제기된 것처럼 교육행정정보망(NEIS) 같은 데이터베이스를 보라구. 보안체제를 아무리 잘 해두더라도 암호화 방법에 대한 인증과 승인권을 가지고 있는 국정원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단 말이야.

해외 정보기관은 내국인 대상 비밀 활동을 엄격히 제한하지. 반면 국정원은 비밀 정보기관이면서 국내 수사권과 정보수집 권한까지 갖고 있어. 감시 범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구. 그래서 다들 국정원을 두려워하는 것 아닌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리더로서의 역할이 축소됐다가 최근에는 다시 힘을 얻고 있어. 비밀 정보기관이 두려운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빅브러더의 식사감으로 헌납되는 거야. 최근에는 기업이 국정원의 정보력을 넘나들고 있지. 전자정부의 기획과 추진은 삼성SDS 같은 재벌 계열사가 수행하는 바람에 정부의 모든 운영과정이 그들의 기술력과 운용력 하에 관리되고 있는 셈이야. 무엇보다 해마다 수십조원씩 벌어들이는 경제력을 생각하면 재벌의 정보력은 국정원을 이미 넘어섰을지도 몰라."

- 요즘은 기업에서 당신의 모습이 강하게 비치는데, 그렇다면 자본의 가장 절친한 파트너로 자리잡았나.

"정보는 힘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돈이야. 소비자를 식별할수록 고객에게 맞는 상품을 판매할 수 있고 재고와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지. 예를 들어 소비자들이 값싼 우유를 원한다는 정보를 바탕으로 우유값을 깎아주는 한편 우유 바로 옆에는 팔고 싶은 주력 상품을 배치해 충동구매를 유도하는 거지. 그게 아니면 우유와 그 상품의 연계를 강조함으로써 우유에 대한 취향을 확장시키기도 하고. 기업의 정보 수집은 저항도 적어. 편리함이라는 혜택을 주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문제의식을 갖기가 어렵거든. 주변의 맛집을 알려줄 테니 위치정보를 제공해달라는 식이지.

어찌 보면 기업은 내부적으로 국가기관과 동일하게 나를 이용하고 있지. 경제민주화라는 말을 하는데, 독재적 경영을 원하는 기업이 많거든. 작업장에 CCTV를 설치해서 노동을 감시하고 사원카드에 근거리무선통신(NFC) 기능을 적용해 근태 관리는 물론 동선을 감시하고 무슨 일을 하는지 파악하지. 물론 노동조합은 중점 감시 대상이지. 자본의 절친 빅브러더? 왜 아니겠어!"

불신이 커질수록 빅브러더의 힘도 커지지

- 미국의 스노든 사건으로 당신이 왕성하게 암약해왔다는 증거가 잡혔는데. 들키지 않으려고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또 자신을 방어하는 수단은.

"별로 달갑지 않은 질문이군. 나는 드러나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지. 어둠은 나의 고향과 같아. 그리고 나는 기본적으로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비밀만 잘 유지하면 되는데, 스노든 같은 인간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지. 한국에서는 국정원이 2000년대 들어 인터넷 패킷 감청이란 걸 해 왔는데 2009년에서야 인권단체들 눈에 띄어서 알려졌지. 그 전까지만 해도 국회도 법원도 몰랐다구. 내부고발자가 폭로하지 않는 한 알려지지 않는 진실이 어둠 속에 많이 잠겨있지.

은밀한 감시를 뒷받침하는 것은 위험론이야. 이렇게 물어볼까. 안전이냐, 프라이버시냐? 국민 전체의 생명과 재산을 위해 우리는 존재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누가 감히. 사회적 통제에서 벗어나는 길이지. 적의 위협 가능성이 있는 한 빅브러더의 생명력은 결코 줄어들지 않아. 북한의 위협이 국정원 권한 강화로 이어지고 시장 안보의 명목으로 기업의 기밀을 보호하기 위한 감시망이 강화돼. 또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 도태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생산성을 높여야 하고, 이를 위해 노동 감시가 늘어나는 거야. 공동체가 무너지고 인간이 개별적 존재로 개체화할수록, 그래서 인간 사이의 불신이 커질수록 나도 더욱 커지게 돼."

- 최근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건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데. 여기도 당신이 개입했나. 했다면 어떻게 했나 궁금한데.

"그건 내가 말할 수 없어. 다만 국정원이 촘촘한 정보 감시의 망을 깔아놓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봐. 망을 깔 때 특정한 의도가 없더라도 의도가 생기는 순간 필요한 정보를 캐낼 수 있는 거지. 이 의원의 경우 국정원이 3년에 걸쳐 수사를 해왔다고 했잖어. 다른 말로 하면 3년간 감시를 한 것이고, 채 전 총장 사건도 쉽게 얻을 수 없는 정보들이 죄다 알려졌어. 누가 주체가 됐든 빅브러더라고 표현할 수는 있겠지. 아무튼 이 문제는 더 이상 묻지 말아줬으면 해. 나도 프라이버시가 있다구."

- 당신이 꿈꾸는 미래는 무엇인가. 누구를 위한 감시인가.

"나는 권력과 자본의 수단이지만, 한편으로 그 자체이기도 해. 권력과 자본은 무한히 확장하려는 욕망을 갖기 때문에 나 역시 함께 성장하겠지. 너희들은 감시를 두려워하면서도 매혹당하기도 해. 최근 TV의 리얼리티 쇼들이 대부분 사생활에 대한 '감시'를 주요 형식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라구. 나는 되도록 많은 정보를 수집하려 할 테고 순간순간 너희들과 함께 활용하면서 즐길 거야. 결과적으로는 권력과 자본이 이익을 보겠지만. 감시는 지배를 위한 것이라고 했지. 감시가 강화되면 결국 인간은 지배의 대상이 될 거야. 인격적 존재가 아니라 기계처럼 살아가는 디스토피아, 그것이 내가 원하는 미래야. 감시 사회가 공고해지면 정보의 정확성도 중요치 않게 돼. 권력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쪽방 할머니에게 가야할 기초연금이 부잣집 할머니에게 갈 수도 있어."

-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적은 무엇이지. 약점을 살짝 알려줘.

"스노든 같은 인간은 정말 두렵지. 딱 질색이야. 이런 내부감시자를 일벌백계해서 진실을 어둠에 감춰야 세상을 지배할 수 있어. 나의 지배 속에서 민주주의는 환상일 뿐이야. 선출된 권력이라도 나는 얼마든지 압도할 수 있다구. 그래서 나를 '제2의 국가'로 부르는 학자도 있는 모양이더군. 해커도 두려

워. 너희들은 해커를 부정적으로만 보지만,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도 모두 해커였어. 정보를 공유하자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나서서 정보를 공개해버리면 나의 세상이 오는 것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는 얘기야. 가장 두려운 존재는 나의 면전에 얼굴을 들이대고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사람이야. 위험을 내세워 숨기고 있는 나의 권력의지를 꿰뚫어보는 시민들이라고 할까. 대중과 함께 감시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사람들, 감시 결과를 권력 수단으로 삼지 못하게 민주적 통제를 가하는 사람들, 피감시자에게 감시 사실을 알리고 항의하게 만드는 사람들이지. 이런 역감시자들이야말로 빅브러더의 천적이야. 나는 나를 통해 너희들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다고 생각해. 너희는 서로를 믿지 못하고 양극화 사회를 만들어 범죄를 양산하는 구조를 단단히 하고 있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너희들이 만든 거야. 빅브러더의 지배가 두렵다면 너희들 스스로 증오와 불신을 걷어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봐. 명심해. 내가 커갈수록 너희들은 행복에서 멀어질 거야."

< 박철응 기자 hero@kyunghyang.com >

출처: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31003175513780&RIGHT_COMM=R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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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wit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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